박제천 시집 『어둠보다 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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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박제천은 우리들에게 『장자시』로 낯익은 시인이다. 그의 다섯번째 시집인 『어둠보다 멀리』는 장자의 세계를 더욱 두텁게 감싸안음으로써 삶과 사물에 대한 성찰의 빛을 더하고 있다.
분재로 키운 작은 사과알을 위해 그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창문을 열어제치거나, 눈뜨고 밤을 지새는 일(『애기능금』) 뿐이다. 혹은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통해 만남과 헤어짐의 구체적 진실을 발견 (『품』)하는 일. 삶의 사소함이 그에겐 더 없는 절대적 의미체로 비친다.
그는 그만큼 삶에 초연하다. 욕망은 그의 것이 아니며 자신을 꾸짖는 소리에도 즐거워한다.
『무인도하나』에서는 섬의 주인이 되리라던 욕심을 「내 마음속의 무인도를 지워버리듯」 털어내고, 『풍뎅이 하나』에서는 한움큼의 샘물도 모으지 못하는 자신을 가벼운 웃음으로 다스린다.
그것은 자기성찰을 부단한 「맑게하기」와 다름 아니다. 자기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 그에게는 「희망」을 의미한다. 삶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자가 아니라 어떤 고된 삶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창조적 정신이 거기에 있다.
그러기에 그는 『천지자연경』에서 『이제는 스스로 산이 되어/ 내 풀과 나무, 내 바위와 물을 키워』야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은 그가 끌어내야할 질료이자 그가 들어가야할 형식이다.
박제천 시인의 작품 세계는 그렇다. 그것은 시인이 갈망하는 자신의 욕망이자 그러한 욕망을 지우려는 이상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뜻에서 박제천의 상상력은 공중을 떠도는 부랑아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물에서 사물로 옮겨다니는 생명에 대한 친화력은 모두 부랑아의 속성을 갖고 있다.
안치숙씨 <경기도 수원시 화서동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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