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LG '도루 名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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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와 LG의 치열한 4위 다툼은 '속도전'이다.

기아는 지난 9일 잠실에서 벌어진 두산과의 경기에서 6-5로 승리, LG를 제치고 4위로 올랐다. 기아는 4-3으로 앞서던 6회 허준·이종범·김종국이 연속 도루 3개를 성공하면서 2점을 추가,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기아차의 스피드업에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앞장서고 있다. 국내에선 연봉을 많이 받는 고참급 스타 선수들이 부상을 염려해 뛰는 데 주저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종범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승 후보로 꼽혔다가 중위권으로 밀린 팀의 자존심을 위해서인지 기회만 되면 훔칠 생각이다. 기아는 개인 도루 순위에서도 이종범이 33개로 1위, 김종국이 19개로 4위에 올라 있다. 대도(大盜)의 팀이다. 도루 성공률(69%)도 최고다.

LG는 성공률(66%)은 기아보다 약간 떨어지지만 가장 많은 도루를 성공시켰다. 9일 현재 96개로 기아(92)보다 4개 많다. LG는 박용택이 29개로 도루 2위, 유지현이 22개로 3위, 마르티네스가 15개로 공동 7위에 올라 있다. 이종열·권용관도 틈만 나면 뛸 수 있는 게릴라다. LG 측은 성공률이 낮은 선수도 종종 뛰기 때문에 성공률에서 기아보다 못하다고 해명했다.

두 팀은 프로 원년부터 도루 부문에서 라이벌이었다. 해태가 1982, 83, 85, 86년 팀 도루 1위에 오를 때 LG의 전신 MBC는 팀 도루 2위를 했다. 역대 통산 도루에서도 기아(해태 시절 포함)가 2천7백26개로 1위, LG(MBC 시절 포함)가 2천5백65개로 2위다. 김일권-이순철이 '해태의 발'로 뛰는 동안 MBC에서는 이해창-김재박-이광은이 이에 맞섰다. 최근에는 이종범과 박용택이 최전방에서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도루는 야구의 3대 요소인 공·수·주 중 '주'의 가장 큰 축이다. 홈런으로 승부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루같은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는 야금야금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어 뿌리까지 무너뜨린다.

두 팀의 포수 김상훈(기아·저지율 0.600)과 조인성(LG·저지율 0.500)은 도루 저지에 관해서는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상대는 도루를 못하고 두 팀은 도루를 한다. LG와 기아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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