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칙위한 개헌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여야 합의로 이룩된 개헌안 공동발의가 13대 총선시기를 둘러싼 이견으로 주춤거리고 있다. 이바람에 개헌안 발의를 위해 소집된 임시국회는 개점 휴업상태에 들어갔고, 10월말 국민투표, 12월20일이전 대통령선거라는 정치일정에도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2월 총선을 주장하는 민정당이나 4월 총선을 주장하는 민주당이나 각기 나름대로 설명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협상 당사자의「집안」사정일 뿐이다. 적어도 국민들의 눈에는 당리당약의 교언으로만 비친다.
내년 2월 정권교체 이전에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는 여당 주장은 대충 국회의원 공천권과도 연관이있고 현 정권의 마무리작업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야당에서 4월 총선을 고집하는 것은 대통령후보를 둘러싼 두김씨간의 미묘한 역학관계는 물론 정권교체 이후의 정계판도와도 관련이 있는게 분명하다.
더우기 노태우총재가 방미등정에 오르기 직전에 개헌안 공동발의를 해주는것은 어느 민정당직자의 말대로「화려한 꽃가마를 태워주는 격」이기 때문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여야가 무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건 총선시기 하나때문에 어렵사리 타결된 개헌안이 막바지에서 볼모로 잡힌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않는다.
지금 국민들은 최근의 노사분규와 이를 빌미로한 양쪽 극단세력의 책동이나 반작용 유혹과 같은 불확실 요인에도 불구하고 내년 2월까지의 정치일정이 순조롭게 추진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 노사분규가 위급한 고비를 넘긴것도 따지고 보면 합리적인 온건세력이 대세의 우이를 잡은데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국민적인 컨센서스의 방향이 이처럼 확고해진 마당에 여야가 자기 잇속이나 따져 정치일정에까지 흠집이 가게 한다면 그것은 국민 여망을 저버린 행위라는 지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긴 정치의 세계에서 당리당약이나 개인적인 이해득실을 전혀 도외시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주문이다. 엄격히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하기는 어려울 뿐더러 명분만을 갖고 정치를 한다는 것은 이상론에 불과하다.
결국 좋은 정치란 현실과 이상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달려있다. 이렇게 볼때 현재 여야가 벌이는 정치싸움은 명분이나 원칙에서도 설득력이 없고 현실적인 계산에서도 소탐대실을 하는게 아닌가 보여진다.
작금 갑자기 바빠진 정치인들의 동향은 연내에 선거가 실시된다는 확신에서 출발하고 있다. 노총재의 방미, 새 국면에 접어든 두김씨간의 후보경쟁, 김종필씨의 정계복귀 움직임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국민 여망대로, 그리고 정부의 약속대로 연내에 새 대통령이 선출되는 것이 분명하다면 정치상황이나 정치권의 판도에 일대변화가 생길 것은 뻔한 일이다. 그때가서 국회의원 선거시기를 언제로 잡느냐가 현재처럼 중요한 쟁점이 될것같지는 않다.
우리가 거듭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목전의 이해득실에만 집착하다 대국을 그르치지 않느냐는 점이다. 원칙과 대도를 벗어나면 국민은 외면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이룩한 합의개헌인가. 부칙때문에 발의를 못해서 다된밥에 재 뿌린다는 세간의 치소(치소)는 받지 않도록 해야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