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이 판결이 잠시나마 위안이 되기를"…두 딸 성폭행 혐의자 상대 시위한 母 무죄

중앙일보

입력

 

[사진 자매의 사건을 집중 취재해 보도한 JTBC `탐사코드J` 방송 캡처]

[사진 자매의 사건을 집중 취재해 보도한 JTBC `탐사코드J` 방송 캡처]

드라마 보조출연자로 일하다 방송 기획사 관계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목숨을 끊은 두 자매의 어머니가 사건 혐의자들을 상대로 항의 시위를 한 것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또 잘못된 공권력으로 인해 장씨가 겪었을 괴로움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0단독 정욱도 판사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장모씨(64·여)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13일 밝혔다.

정 판사는 "공권력의 실패로 인해 가중되었을 장씨와 두 딸의 고통에 좌절과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며 "부디 이 판결이 아픔 속에 살아가는 장씨의 여생에 잠시나마 위안이 되고,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버린 두 자매의 안식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장씨는 지난 2014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빌딩 앞에서 "내 딸을 성폭행한 자들은 반성하지 않는데 두 딸의 영혼은 하늘을 맴돌고 있다"며 최모씨 등 12명의 기획사 관계자들의 실명이 적힌 백보드판을 들어 다수인들이 볼 수 있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장씨의 큰 딸 A씨는 연기자 지망생인 동생 B씨의 권유로 2004년 무렵부터 방송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기획사 관계자들은 A씨를 감금해 성폭행하고, 반항하면 동생을 팔아넘긴다는 등 협박을 일삼았다. 이들은 드라마 세트장 으슥한 장소나 세트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A씨를 추행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A씨는 2004년 12월 이들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A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다시 그 사건들을 기억하는 게 참을 수 없다"며 고소를 취하했고 사건은 불기소 처분으로 끝났다. 이후 A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지난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동생 B씨는 이 사실을 알고 정신적 충격으로 한 달 뒤 언니를 따라 목숨을 끊고 말았다.

장씨는 딸을 유린한 가해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성폭행을 당한 때로부터 3년인 소멸시효가 지나 패소했다. 억울했던 장씨는 거리로 나가 가해자들을 규탄하는 시위를 했다.

재판부는 장씨가 든 백보드판에 기재된 내용이 완전히 허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소당한 12명의 기획사 관계자 중 4명은 성관계 사실을 인정했고, 설령 백보드판에 기재된 내용이 허위라고 가정하더라도 장씨가 자매의 기록을 볼 때 사건의 진실성을 확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온라인 중앙일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