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신민아 이번엔 女프로복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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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많이 변했다. 약한 척 내숭 떠는 공주의 시대는 가고, 웬만한 남자는 눈 아래 둘 만큼 강한 여자가 뜨고 있다. 과거라고 왜 터프한 여자가 없었겠느냐마는 요즘은 강인함에 미모까지 갖춰 '대남(對男)' 경쟁력을 대폭 업그레이드했다.

한 마디로 매력적인 여자의 조건이 바뀌었다고나 할까. 시대를 가장 잘 반영한다는 드라마에서 이런 흐름은 쉽게 읽을 수 있다. 여자 보디가드('보디가드'.KBS)와 조선시대 포청의 여형사 다모('다모'.MBC)에 이어 이번엔 여자 프로 복서가 기다리고 있다.

10월 8일 첫 방송하는 16부작 미니 시리즈 '때려!'(SBS.이현직 PD)는 한국 드라마에서 처음 시도하는 여성 프로 복서 이야기다. 챔피언 문턱에서 목숨을 잃은 오빠를 대신해 사각의 링에 선 여자 프로 복서 유빈이 코치와 사랑에 빠지지만 뒤늦게 그가 오빠를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이라는 걸 알고 갈등한다.

어찌보면 아주 통속적이고 뻔한 내용이지만 이를 특별한 드라마로 탈바꿈 시키는 건 바로 여주인공의 캐릭터다. 최근 달라진 우리 사회의 여성상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고 많은 직업 중에 여성 프로 복서를 다룬다는 점도 그렇지만, 그 역할을 가녀린 이미지의 신민아가 맡는다는 게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민아라면 영화 '화산고'에서 검도부 주장 역을 맡기도 했지만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아시나요'의 한없이 가냘픈 아오자이 처녀와 영화 '마들렌'의 로맨틱한 헤어 디자이너 희진으로 각인된 배우 아닌가. 그만큼 강한 여자에 대한 세인들의 고정관념을 일순 날려버리는 캐스팅인 동시에 이 시대 여성상을 제대로 읽은 가장 적합한 선택인 셈이다.

사실 신민아는 0순위 캐스팅이 아니었다. 유빈 역은 당초 '깡다구'있는 공효진이었다. 이런저런 연유로 공효진이 유빈 역을 고사하면서 신민아에게 기회가 왔다.

누가 봐도 권투와 잘 어울리는 공효진과 한번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신민아. 좋든 싫든 공효진의 그림자가 부담으로 다가올 법도 한데 신민아는 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서울 장충체육관의 촬영 현장에서 만난 신민아는 "대본을 읽는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다"고 말했다.

"요즘의 추세인 강한 여성 역할이라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프로 복서라는 직업도 특이하지만 그동안 남성 전유물이었던 끈끈한 의리, 불의를 못참는 정의 등의 덕목을 갖춘 캐릭터거든요. 0순위가 아니라 10순위, 100순위였어도 같은 판단을 했을 거예요."

'때려!'의 프로듀서 김영섭 차장은 "사실 공효진이었으면 너무 뻔한 캐스팅이 될 뻔했다"면서 "신민아의 의외성이 드라마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라고 말한다.

아무리 멋진 역할이라도 여배우가 극의 상당 부분에 눈이 퉁퉁 붓고 살이 터져 밉상으로 등장한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요즘 TV와 충무로가 아무리 망가지는 여배우들로 가득 찼다 해도 얼굴까지 망가지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그런데 신민아는 이 역시 별로 대수롭지 않단다.

"이제 여배우가 이쁜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겉모습만 예쁘게 보이는 식상한 캐릭터가 아니라 비록 외형은 망가져도 살아있는 캐릭터만이 보는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얼굴이 퉁퉁 붓거나 마우스피스를 끼워서 입이 툭 튀어나와 보이더라도 전 그게 더 예뻐 보일 것 같아요. 뭔가 열심히 해서 망가지는 게 그냥 예쁜 것보다 더 의미도 있구요."

신민아는 요즘 촬영이 있는 날도 빠지지 않고 서울 영등포 거인체육관에서 매일 두 시간씩 권투 연습 중이다.

권투를 처음 시작한 일주일 동안은 밥도 못 먹고 토할 만큼 체력이 턱없이 달렸지만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인터뷰하는 지금 이 순간도 줄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이젠 운동을 안하는 게 더 이상하다"고 말할 정도다.

영화 같은 멋진 장면을 만들기 위해 일본에서 들여 온 '수퍼 슬로 모션'용 최신 기계가 최소한의 어설픈 동작도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운동 두 주 만에 3㎏을 빼고 보니 살 빼는 재미가 쏠쏠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신민아는 "시청자들이 너무 기대하면 부담스럽고 조금만 기대해주면 아주 고마울 것 같다"면서도 "드라마가 떠서 여성들 사이에 권투 열풍이 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권투와 사랑에 빠진 듯이.

글=안혜리,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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