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강등” vs “빚 부담 크다” 이랜드·한신평 신용등급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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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구조 개선 노력과 성과를 반영하지 않은 불합리한 강등이다.”(이랜드)

작년 말 이랜드월드 BBB → BBB-
한 단계만 더 내려가면 투기등급
한신평 “패션 부문 실적 부진 계속”
이랜드 “손해배상 소송 청구 검토”

“신용등급 하향을 늦추거나 하향하지 않는 것은 기업평가 본연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한국신용평가)

신용등급을 놓고 시작된 이랜드그룹과 한국신용평가(한신평) 간의 공방이 한 달을 넘기며 점입가경이다. 이랜드월드의 핵심 사업부인 중국패션법인 실적과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 속도에 대한 평가를 놓고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이랜드는 기업가치가 훼손됐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한신평은 이례적으로 설명회를 열고 평가의 정당성을 알리고 있다. 신용평가사의 등급산정 결과에 대해 기업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발단은 한신평이 지난해 12월 30일 이랜드그룹의 지주회사인 이랜드월드의 신용등급을 ‘BBB(부정적)’에서 ‘BBB-(부정적)’로 낮추면서다. 한 단계만 더 내려가면 투기등급이 된다. 한신평이 제시한 신용등급 하향 근거는 세 가지다. 패션 부문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영업으로 번 현금 7000억원은 이자상환·운전자본에 쓰고 나면 원금을 갚을 게 없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4조4000억원(부채비율 318%)으로 늘어난 순차입금을 지난해 3분기까지 줄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금 창출력에 비해 차입금과 단기 상환 부담이 과중하다는 분석이다.

이랜드는 ‘법적대응’을 표방하며 강력 반발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등급 산정시 패션브랜드 티니위니·부동산 매각에 따른 대금 유입과 4분기 매출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중국 최대 쇼핑 시즌인 광군제(11월 11일) 하루에만 약 56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4분기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주장했다.

이랜드의 반발이 거세지자 한신평은 1월 20일 웹캐스트(webcast)를 통해 “이랜드 신용등급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시장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류승협 한신평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투자자들에게 “부동산 매각과 티니위니 매각은 신용등급을 하향할 당시 반영했고, 이랜드리테일 기업공개(IPO)도 일정 수준 가능성을 평가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랜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당장 지난해 상반기 투자자와 약속했던 이랜드리테일의 IPO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심형 아울렛과 NC백화점 등을 운영하는 이랜드리테일은 지난해 12월 28일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한 후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이랜드리테일의 주식 63.5%를 이랜드월드가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랜드월드의 신용등급 강등은 최대 3조원이 모일 것으로 보이는 이랜드리테일 IPO 흥행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는 모두 이랜드월드를 ‘BBB’ 단계로 평가하고 있다. 한기평 관계자는 “지난해 12월에 이랜드그룹 관련 보고서가 있었는데 당시 내용도 부정적이었다”며 “다만 4분기 실적까지 결산하면 신용등급은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이랜드와 한신평 모두 ‘확전’은 꺼리는 분위기다. ‘기업이 신용평가사를 압박하려 든다’ ‘평가가 너무 조급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랜드 관계자는 “소송 언급은 신용등급 평가 과정에서 기업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한 우려와 항의의 표시”라며 한발 물러섰다. 한신평 관계자 역시 “4분기 매출이 반영된 평가를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두 회사의 공방과 상관없이 이랜드의 유동성 문제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여전하다. 이에 따라 이랜드가 부진한 중국 사업의 활로 모색, 재무구조 개선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랜드 관계자는 “5월 안에 이랜드리테일 상장과 부동산 추가 매각으로 2018년까지 부채비율을 200% 미만으로 낮출 계획”이라며 “최근 2년 동안 내실을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등급

기업이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발행할 때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AAA+가 최상등급, BBB-등급까지가 투자적격, BB+등급 이하부터는 투기등급으로 분류한다. 투기등급은 원리금 지급 확실성이 부족하고 장래 안정성에서도 투기적 요소가 있다는 의미다.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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