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치사 조작·은폐사건 검찰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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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실관계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들이 ▲조한경·강진규·황정웅·반금곤·이정호 등에 의하여 박종철이 물로 가혹행위를 당하는 과정에서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 범인을 축소·도피시키기로 공모한 후 ▲범인축소·도피의 구체적 실행행위를 감행하였다는 것입니다.
2, 피고인 박원택과 유정방은 1월14일 상오 11시30분쯤 박종철군이 사망한 직후 그 현장에 가본 후 피고인 박처원은 그날 하오 3시쯤 대공수사 2단장실에 가서 박군 사망경위에 대하여 보고를 받을 때, 그가 조한경 등 5명에 의하여 물로 가혹행위를 당하는 과정에서 사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안 것으로 인정됩니다.
3, 1월14일 하오 3시쯤 피고인 박처원이 대공수사 2단장실에 도착하여 피고인 유정방과 박원택이 있는 자리에서 박종철이 사망한 경위를 보고 받고 사후 수습대책을 논의할 때 피고인들이 범인을 축소·도피시키기로 공모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4, 피고인들이 범인축소·도피의 구체적 실행행위를 하였다고 인정됩니다.
조한경·강진규의 진술에 의하면 그들이 치안본부 특수수사2대에서 수사를 받을 때 피고인 박원택이 둘이 책임지면 가족생계·재판문제 등은 바깥에서 알아서 하겠다는 뜻으로 『바깥걱정은 하지 말라』고 설득했고, 피고인 유정방이 더 이상 쇼크사로 주장할 수 없게 되었으니 둘이서 책임지라는 의미로 부검결과가 질식사로 나왔다.
『너희들이 속죄양이 되라』고 말했으며, 또한 감찰조사시 범인이 더 있음을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검찰에 가서도 경찰에서 진술한 것과 같이 진술하라』고 설득했고, 피고인 박처원이 『관련자가 더 있다 해도 대공요원은 희생시키지 말고 둘이서 책임지고 가라』고 지시함으로써 나머지 범인 3명이 수사기관에 발각되지 않도록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양형 ▲피고인들이 공판정에서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관계로 피고인들의 진술을 통하여 그 범행동기를 들을 수 없었던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모든 대공수사 경찰관과 마찬가지로 피고인들 역시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북괴공산집단의 현실적인 위협 앞에 서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오직 공산세력을 척결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정력을 바쳐 국가·사회를 위하여 공헌하여 왔음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특히 피고인들은 경찰관으로서의 공직생활 대부분을 대공수사 업무분야에서 일해왔고, 그 동안의 공적 또한 적지 아니함을 인정합니다.
또한 피고인들이 사랑하는 부하를 하나라도 더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심정도 넉넉히 추단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일시적 판단 잘못으로 어떠한 상황 아래서도 진실하고 엄정하게 그 직무를 수행하여야할 공직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와 사명을 저버림으로써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여지없이 실추시켰다는 점에서 피고인들의 지난날 공적만으로는 관용될 수 없는 사건이고, 준법에 대한 우리 모두의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교훈적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사건이 국민에게 엄청난 분노와 충격을 안겨주었던 가혹행위 치사범인을 축소·도피시킨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아니 될 사건이란 점을 생각할 때 비록 피고인들의 범행동기가 부하를 사랑하는 인간적 정리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결코 가볍게 논죄 될 수 없는 불행한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고, 피고인들에 대한 형량 또한 그러한 관점에서 결정되어야 마땅할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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