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쟁의인가|김창욱 <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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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일 낮12시50분 부평 대우자동차 정문. 3백50여명의 근로자들이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위협하면서 사장·부사장을 비롯, 간부 18명을 임원실에서 끌어내 꿇어 앉히려 했다.
과격근로자 가운데는 그래도 『사장을 그럴수 있느냐』는 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묵살됐다. 그런 상태에서도 끈질기게 협상을 시도하던 사장이 밤10시쯤 연금상태에서 졸도했다. 그러나 근로자들은 나머지 간부 17명의 연금을 4일 새벽3시 경찰이 진입할 때까지 풀지 않았다.
8월부터 일부 사업장에서 빗나가기 시작한 분규의 양상은 제동이 걸리지 않은채 법상식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윤리나 도덕까지 짓밟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Q사에서는 8욀12일 이틀째 연금중이던 부사강과 상무등 중역을 포클레인 삼에 싣고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노래를 시킨뒤 돈(노래값)을 요구하는가하면, S사에서는 협상하려는 사장이 타고있던 승용차를 들었다 놓고 유리창을 발로 차 깨기도했다.
O사에서는 8월18일 근로자들이 사장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사장을 폭행해 전치2주의 상처를 입혔고, D사에서는 사장을 드럼통에 넣고 나무에 매달아 장작으로 치는 불가사의한 폭력을 휘둘렀다.
J사 농성근로자들은 사장을 무릎을 꿀려 앉힌뒤 발길질을 하면서 『무얼먹고 이렇게 배가 나왔느냐』는 모욕을 주기도했다. 특히 3일 현대중공업 농성근로자들은 부장급이상의 간부 숙소에 들어가 가족을 목욕탕에 연금한뒤 팽과리를 쳐댔고, 또다른 Q사에서는 임원전원에게 토끼뜀을 시키기도했다.
파국으로 치닫던 노사분규가 쟁의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사주나 경영자에 대한 폭력사태로 치닫고 있다. 현대중공업에 이은 대우자동차의 폭력사태는 기업의 존립기반과 윤리성까지 위협하고 있다.
근로자가 최소한의 도덕성과 윤리성을 상실할 때 기업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동안 노동3권을 제약당해온 근로자들의 일시적 불만 분출을 「이유있다」고 쳐다보던 시민들이 「그럴 수있느냐」며 외면하기 시작했다. 특히 경영자에 대한 최근의 잇단 폭행과 방화·파괴등 일련의 사태는 협상을 통한근로조건개선 투쟁차원을 넘어 시민들까지도 불안과 공포 분위기로 몰아 넣고있는 것이다. 무엇을, 누구를 위한 쟁의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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