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때마다 논란 반복, 소방서 피해 추산 방식 개선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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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달 15일 불이 난 여수 수산시장에서 진화 작업을 마친 소방관들이 화재원인 조사 및 피해액 추산을 위해 화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15일 불이 난 여수 수산시장에서 진화 작업을 마친 소방관들이 화재원인 조사 및 피해액 추산을 위해 화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15일 전남 여수 수산시장에 불이 난 후 소방당국은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진화를 끝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체 추산한 피해액 규모가 상인들의 주장에 비해 턱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소방당국은 당시 상부 보고를 위해 관련 자료나 조사를 충분히 하지 못한 상황에서 피해액을 5억2000여만원으로 임시 산정했다.

전남소방본부, 피해액 현실화 추진
여수 수산시장 피해 16억원 집계
상인들 “70억대 피해 났다”반발
향후 영업 손실 반영 필요성 제기
중앙본부에 산정 방식 개선 건의

이 소식을 들은 상인들은 “피해액이 최소 50억원이 넘는다”며 반발했다. 실제 대목인 설 명절을 앞두고 상인들이 장사를 위해 수산물을 가게에 가득 들여놓은 점, 전체 125개 점포 중 117개 점포가 소실되거나 그을린 점 등에서 상인들의 주장에 무게가 실렸다. 소방당국의 계산대로라면 점포당 피해액이 440여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방당국은 추가 조사를 벌여 피해액을 16억7000여만원으로 다시 산정했지만 상인들은 여전히 “70억원대 피해가 났다”며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에 소방당국은 “실제 피해규모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화재 피해액 추산방식에 대한 현실화를 추진키로 했다. 대규모 화재 때마다 되풀이되는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다.

전남도소방본부는 9일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에 화재 피해액 산정 방식 개선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여수 수산시장 화재를 계기로 피해액 추산 방식을 현실화하는 게 골자다.

전남소방본부는 지난달 말 전국 소방지휘관 영상회의에서 여수 수산시장 피해액을 추산하는 과정에 불거진 문제점을 소개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현행 소방당국의 피해액 추산 방식이 다소 보수적이어서 피해 규모가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는 게 이유였다.

소방당국은 불이 나면 국민안전처 훈령인 ‘화재 조사 및 보고 규정’에 따라 피해액 조사에 나선다. 건물이 세워진 시기와 건물의 종류, 건축 재료, 화재 정도 등을 고려한다. 건물의 피해 정도는 전소·반소·부분소·그을임 등으로 나눠 파악한다.

그러나 소방당국의 화재 피해 추산액은 통상 피해자가 주장하는 액수보다 적다. 보험사가 산정하는 액수보다도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구 기간 동안 예상되는 예상 손실액이나 건물에서 당장 주거나 영업이 가능한지 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방당국이 추산하는 화재 피해액의 법적 구속력은 없다. 보험사 역시 자체 조사와 특약 사항 검토 등을 거쳐 보상액을 최종 결정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피해자들은 소방당국의 추산액이 높게 잡히기를 바란다. 화재로 인한 법적 분쟁이 생길 경우 근거자료로 삼기 위해서다.

전남소방본부 최형호 방호팀장은 “중앙소방본부도 피해액 산정 방식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실제 개선이 이뤄지면 일선 소방관들이 항의를 받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여수경찰서는 수산시장 화재 한 달여 전인 지난해 12월 초 합동점검을 진행한 여수시·여수소방서 공무원 등 10여 명을 불러 조사했지만 특별한 혐의점을 포착하지 못했다. 화재 원인은 당초 추정대로 누전인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다.

경찰은 점포 4곳이 전기를 끌어쓰는 시장 내 기둥에서 불이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임시 판매장을 운영 중인 여수 수산시장은 3월 말 재개장 될 예정이다. 이달 중순까지 시설물 안전성 조사 등을 마치고 약 한 달간 리모델링 후 새로 문을 연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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