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고쟁이를 란제리로 … 여성 속옷산업 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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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속옷산업 1세대 남상수(사진) 남영비비안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92세. 1925년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난 그는 54년 무역회사인 남영산업을 창립, 국내 무역산업의 초석을 마련했다. 57년엔 남영비비안을 세우며 국내 여성 속옷 산업을 개척했다. 당시 고쟁이나 광목으로 만든 속옷을 착용했던 여성에게 브래지어, 거들 같은 기능성 속옷을 선보였다. ‘한국 여성이 점차 서양식 의복에 익숙해지고 있어 좀 더 예쁜 맵시를 위해 새로운 여성 속옷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창업 이유였다.

남상수 남영비비안 명예회장
50년 대 스타킹 선보이며 시장 선도
사회·종업원·주주에 대한 책임 강조

고인은 50년대엔 스타킹을 선보여 시장의 선두 주자로 나섰다. 58년 국내 최초의 스타킹 ‘무궁화’를 내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여성들은 뻣뻣한 천으로 만든 목양말을 신었다. 이어 봉제선이 없는 ‘심레스 스타킹’(62년), ‘고탄력 스타킹’(83년)을 선보이며 끊임없이 혁신했다. 가슴을 모아줘 볼륨있게 보이게 해준다는 ‘볼륨업 브라’를 95년 국내 최초로 내놓아 10개월 만에 100만개가 팔렸다. 98년엔 속옷 자국이 드러나지 않는 ‘노브라’를 국내 최초로 만들었다.

미국·유럽·일본에 속옷과 스타킹을 수출해 외화 획득에 기여했다. 70년대 홍콩 스타킹 시장의 30%를 점유했고 80년대엔 미국에 연간 800만장의 브래지어를 수출했다. 당시 미국 여성 10명 중 1명이 비비안 브래지어를 입었다. 남 명예회장은 생전에 외국인 바이어를 만날 때 직함이 없는 명함을 사용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바이어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함을 물어보면 ‘회사를 대표하는 세일즈맨’이라고 소개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생전에 “사업가에 세 가지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 종업원· 주주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평소 청소년 교육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사업가로서 사회적인 책임 때문이었다. 창립 초기인 76년 연암장학회를 설립한 후 매년 2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현재까지 6000명에게 48억원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73년부터 24년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을 맡았다. 한일 경제협의회 부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상공의 날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금탑·은탑·동탑 산업훈장을 받았고 수출의 날 산업 포장을 수여했다.

속옷 시장 개척과 수출 기여에 바친 일생을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에 풀어냈다. 2002년 6월부터 8월까지 45회에 걸쳐 ‘고쟁이를 란제리로’를 주제로 국내 속옷 산업의 살아있는 역사를 실었다. 그는 기고를 통해 “젊은 사업가에게 무역업계 최고참으로서 바이어와 대등한 관계 유지, 옛 기억을 되살리는 리마인드(Remind) 기법, 계약조건 불이행시 100% 보상이라는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다”고 밝혔다.

유족은 부인 김영순 씨와 장남 남석우 남영비비안 회장, 딸 남명화·진화·경화·지윤·지희·지현·승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11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선산이다. 02-3410-3151.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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