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모 아니면 도 … 대우조선 회사채 투자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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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는 지금

“지금 사는 사람들은 채권이 아니라 ‘로또’를 사는 셈이다.”

정상화 기대에 개인 투자자 몰려
만기 상환 땐 연환산 수익 100%↑

뉴스 나올 때 마다 채권값 급등락
한진해운처럼 투자금 날릴 수도

한 증권사의 채권 담당 전문가는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투자를 이렇게 비유했다. 오는 4월 21일 만기가 돌아오는 액면가 1만원의 채권값은 9일 8401.2원에 거래를 마쳤다. 만기 상환만 이뤄지면 두 달여 만에 채권 하나당 약 1600원의 수익(약 18%)을 올리는 셈이다. 연 환산 수익률로는 100%를 웃돈다. 그는 “개인들은 정부가 어떻게든 대우조선은 살리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감에 투자를 한다”고 말했다.

투자가 아니라 ‘투기’의 차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대우조선 채권값은 구조조정 방안과 관련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출렁인다. 지난해 9월 채권단 자율협약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채권값은 7180원까지 떨어졌다. 값이 급락하자 장내 시장에서는 거래량이 급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장내 채권 거래의 대부분은 개인 투자자라고 보면 된다”며 “당시 채권 관련 일을 하는 전문가들이 개인 돈으로 대우조선 채권을 사들인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거래소에 상장된 채권은 대부분의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주식처럼 쉽게 사고 팔 수 있다. 보통 액면가 1만원에 만기 일자나 상환 가능성에 따라 할인 거래된다. 채권값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상환 리스크가 커졌다는 의미다. 리스크가 커진 만큼 수익률은 올라간다.

‘사자’세가 몰리면서 채권값은 이후 슬금슬금 올라갔다. 지난해 10월엔 8500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지난해 9월 저점(7180원)에서 샀다면 한 달도 안 돼 20% 이상의 수익률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업 구조조정 임박, 대우조선 운명 결정’ 등 뉴스에 따라 채권값이 출렁였다. 시장에서는 “개인들끼리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8일 장 마감 후에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우조선 구조조정과 관련해 어떠한 선택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현대상선의 방법도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권뿐 아니라 공모 회사채 6300억원어치에 대해서도 채무재조정을 시행했다. 절반은 주식으로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는 2년 거치 후 3년 분할상환으로 재조정했다. 회사채 대신 받은 주가가 떨어지면 그만큼 손해를 보는 구조다.

대우조선도 사채권자 집회(회사채를 보유한 투자자들의 회의, 주식의 주주총회와 유사)를 열어 공모채권 상환유예 등 채무재조정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9일 채권값 급락이 예상되는 뉴스였지만 동시에 1조원 규모의 수주 소식이 알려지면서 채권값은 1.6% 하락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대우조선과 같은 회사채에는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설마 개인투자자의 돈을 안 물어 주겠느냐’는 생각에 채권을 사는데 요즘엔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과거엔 ‘선량한’ 개인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였지만 최근엔 투자 위험을 충분히 알고 들어간 개인투자자들 돈만 물어주는 것은 오히려 ‘도덕적 해이’를 방조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핵심 산업을 살리기 위해 들어간 세금을 투기 목적의 투자자들 돈을 물어주는데 써야 하느냐는 의문이다.

앞서 ‘대박’을 노리고 달려든 한진해운 회사채 투자자들은 결국 ‘쪽박’을 찼다. 지난해 초만 해도 9000원선에 거래되던 한진해운 채권은 지난 2일 파산이 최종 결정되면서 400원을 끝으로 거래 정지됐다. 8일부터 7일간 정리매매가 진행된다. 성현희 NH투자증권 골드넛WM센터 PB팀장은 “회사채에 투자할 때는 수익률만 보는 게 아니라 신용등급까지 따져 신중히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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