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약대 입시학원 … 넥타이 부대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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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좁은 문 뚫었지만 야근·꼰대문화 지겨워”

4일 서울 신촌의 로스쿨 입시학원 주말반 강의 모습. 수강생 절반 이상이 직장인이다. [사진 김현동 기자]

4일 서울 신촌의 로스쿨 입시학원 주말반 강의 모습. 수강생 절반 이상이 직장인이다. [사진 김현동 기자]

토요일인 지난 4일 서울 신촌의 한 학원 강의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과목 중 하나인 ‘추리논증’ 강의를 스물 남짓이 듣고 있었다. 학원 관계자는 “절반 이상이 직장인”이라고 했다. 평일 아닌 토요일에 몰아 강의를 듣는 ‘주말반’이다.

로스쿨 주말반 절반 이상 직장인
회사 점심 시간 혼밥하며 열공도

수강생 중엔 ‘대기업 3년차’ 김모(33)씨도 있었다. 지난달 주말반에 등록했다. 이유를 물어 보니 “지금의 직장을 탈출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김씨는 “직장 상사가 주말에 시도 때도 없이 보내는 카톡이 짜증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직장에선 내 생활이란 게 전혀 없다. 툭하면 자정 넘겨 퇴근하게 하는 문화도 싫다”고 했다.

정보통신(IT) 분야 대기업을 7년째 다닌다는 정모(36)씨도 주말반을 다닌다. 그는 “평일 저녁 강의도 있지만 야근과 회식 때문에 시간을 내기 곤란할 때가 더 많다”고 했다. 정씨는 “학원 수강은 회사엔 당연히 비밀이다. 부모님께 결심을 알렸더니 ‘사람답게 살아 보라’며 응원해 주셨다”고 했다.

로스쿨과 약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학원가가 이처럼 주말반을 속속 개설하고 있다. 어렵사리 ‘취업문’을 뚫은 새내기에서 경력 7~10년차까지 직장인이 주로 듣는다. 이 학원은 “지난해 연말 로스쿨 입시설명회를 했는데 온 사람 중 절반이 직장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로스쿨이나 약대를 준비하는 이유는 단지 소득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직장의 조직문화에 대한 실망’을 들었다. 지난해 서울 소재 로스쿨에 붙은 이모(34)씨도 그런 사례다. 이씨는 직전까지 정유회사에 다녔다. “연봉이 괜찮고 취업준비생이 선망하는 회사”라 했다. 그런데 막상 입사하니 “선배들이 허드렛일을 떠넘기는 게 싫고, 선배 눈치 보느라 퇴근하지 못하는 나도 싫었다”고 했다. 직장 내 ‘꼰대 문화’에 실망해 로스쿨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일하랴 공부하랴, 직장인 수험생의 ‘이중생활’은 험난하다. 당장 공부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출판사에 다니며 약대 진학을 준비 중인 이모(38·여)씨는 점심에 ‘혼밥’(혼자서 먹는 식사)을 한다. 되도록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를 찾아가 수험 교재를 펼친다. 이들에게 제일 부담스러운 건 회식이다. 무역회사 직원으로 3년째 로스쿨을 준비한다는 김모(34·여)씨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빠지거나 되도록 술을 안 마신다. 회식 후에라도 기출문제를 하나라도 풀고 자야 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렇다고 공부에 올인하기 위해 직장을 관둘 엄두는 내기 어렵다. ‘시험에 떨어져 백수가 될까’ 걱정돼서다. 사교육업체 메가엠디·메가로스쿨 신촌점 김상우 원장은 “직장인 다수가 합격 때까지 직장 생활을 병행한다” 고 했다. 로스쿨의 문턱은 높다. 김 원장은 “서울 소재 로스쿨은 학점 4점 이상, 토익 900점은 돼야 도전할 만하다. 실제 합격자의 요건은 이보다 높다”고 했다.

직장인들의 이 같은 학원행에 대해 전문가들은 심리적 요인을 꼽는다. 문화평론가 이혁준씨는 “변호사·약사 준비는 망하거나 해고당하지 않는 직업을 찾고 싶다는 몸부림 같다”고 설명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연공서열, 성별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고 수직적·위계적인 직장문화 속에서 직장인들이 압박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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