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시장 대목인 '졸업 입학 시즌' 맞았지만 우울한 화훼 농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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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최대 대목인 졸업·입학 시즌이 다가왔지만 꽃값은 지난해의 절반 정도 수준이니 우울하기만 합니다.”

지난해 9월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이후 계속되고 있는 화훼 농가의 시름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화훼 농민들의 낙담이 깊어지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구산동의 비닐하우스 5개동(3300㎡)에서 장미를 재배하는 정수영(62)씨는 “10년째 장미를 기르고 있지만 지금 같은 어려움은 처음”이라며 “이대로 가다간 화훼농민 모두가 거리에 나앉게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5000만원을 들여 비닐하우스 난방비 등을 충당했는데 난방비 조차 건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화훼농협 등에 따르면 서울 강남의 화훼직판장에 내놓는 장미 1단(10송이) 가격은 지난해 2월 초 1만∼1만5000원이었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인 7000∼8000원 수준이다. 그나마 올 초 4000원까지 떨어졌다가 조금 올랐지만 졸업·입학 시즌에도 가격 상승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씨는 “졸업·입학 대목을 앞두고 값싼 수입산 장미까지 넘쳐나면서 꽃값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주변 장미 재배농가 3곳은 난방비도 건질 수 없다고 보고 이번 겨울 장미 재배를 아예 포기했다”고 말했다.

고양시에서 30년째 난을 재배하는 양승상(55)씨도 마찬가지 고통을 털어놨다. 그는 “이제는 어디다 고민을 털어놓기도 피곤할 정도”라며 “아무리 화훼 농가의 어려움을 얘기해도 대책이 나오지 않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지난해 말 김영란법 시행 이후 난 소비가 급락하자 비닐하우스 면적을 1만5000㎡에서 6000㎡로 절반 이상 줄였지만 운영난을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양씨는 “책상 위에 놔 두는 난을 뇌물로 주고 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정작 뒤로 주고 받는 뇌물을 단속해야지 난을 뇌물로 보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병희(50) 한국화훼농협 상무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수도권 지역에서만 매월 10∼15곳씩 화훼농가가 폐업하고, 화방도 매월 2∼3곳씩 폐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주고 받는 화훼 선물을 부정청탁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며 “법 시행으로 존폐의 기로에 내몰린 화훼 농민들의 회생을 위해 화훼선물 주고 받기는 청탁금지법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양=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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