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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사고 벌써 잊었나…살균제 PHMG 불법 제조·수입·유통

중앙일보

입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고에도 불구하고 관련 업계가 국민 안전보다는 이익을 앞세우는 관행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 무허가 업체 33곳 적발
물질안전보건 자료까지 조작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자 유독물질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를 무허가로 제조·수입·판매한 O사와 S사 등 33개 업체를 적발해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송치했다고 7일 밝혔다.

이들은 2013년 이후 최근까지 유독물질 수입신고를 하지 않거나 유해화학물질 영업 허가를 받지 않고 PHMG를 제조·판매하다 적발됐다.

국내에서 PHMG는 PHMG-인삼염과 PHMG-염화물 두 가지 종류로 유통되고 있다. PHMG-인산염은 주로 섬유 등의 항균 처리제로, PHMG-염화물은 주로 항균 플라스틱 제조 원료로 사용된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드러난 이후인 2012년 9월 PHMG-인산염의 경우 농도가 25% 이상인 혼합물을 유독물질로 지정했으며, 2014년 3월에는 함량기준을 강화해 1% 이상인 혼합물을 유독물질로 분류했다. PHMG-염화물 함량이 1% 이상인 혼합물도 2014년 3월 유독물질로 지정했다.

하지만 무허가 제조업체인 O사는 2013년 8월 말부터 지난해 5월 말까지 25%로 희석한 PHMG 180톤을 제조해 판매총책인 P사를 통해 19개 업체에 유통시켰다.

P사는 구매 업체들이 유독물 지정 이후 우려를 나타내자 '물질안전보건자료'까지 조작했다. 실제 성분 함량(25%)보다 낮은 수치(24%)인 것으로 자료를 조작, 유독물이 아닌 일반화학물질인 것처럼 단속 공무원을 속였다.

반면 납품을 받은 업체들은 구입한 물질이 유독물질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독물질 취급을 위한 별도의 영업허가를 받지 않고 제조·판매했다. 특히 유독물질 함량기준이 1%로 강화된 2014년 3월 이후에도 무허가 영업을 계속했다.

또 무허가 제조업체인 D사는 수입 신고도 없이 중국에서 PHMG-인산염 함유량 52%의 유독물질을 수입, 24%로 희석한 제품 8톤을 만들어 유통시켰다.

C사도 PHMG-염화물 분말 13.5톤을 중국에서 수입, 이를 24%로 희석해 판매했다. 하지만 유독물질 수입신고도 하지 않았고, 유독물질 제조 허가도 받지 않았다. C사로부터 납품을 받은 4개 회사도 유독물질 판매업 허가 없이 섬유회사 등에 판매하다 이번에 적발됐다.

환경부 박봉균 화학안전과장은 "이번에 불법 제조·판매가 적발된 PHMG의 양은 모두 295톤으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에 사용된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PHMG는 흡입독성은 강하지만 피부 독성은 낮은 물질이라 PHMG로 항균 처리된 섬유와 피부 접촉을 하더라도 인체에 유해한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실제 섬유에 항균 처리할 때에는 낮은 농도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채 가시기도 전에 살균제 성분을 불법으로 제조·판매·유통을 했다는 점에서 시민들에게 충격을 준 셈이다.

박 과장은 "그동안 일선 공무원의 지도·점검만으로는 유독물질 불법 유통망을 추적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지난해 2월 출범한 환경부 중앙환경사범수사단의 역할 덕분에 불법 유통 고리를 밝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적발 업체 중 무허가로 제조한 업체는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허가없이 판매·사용한 업체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의 처벌을 받게 된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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