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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담배 지갑’의 역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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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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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지독한 골초였다. “잠잘 때만 피우지 않는다. 나는 이 세상에 담뱃불을 빌리러 왔다”고 말했을 정도다. 담배를 물고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썼을 그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도 담배와의 45년 연을 끊지는 못했다. 2년 전 쓰레기통 옆에서 피우는 신세가 처량하고 치사하다며 절연을 선언해 화제가 됐는데 6개월 만에 손을 들었다. 원고 쓸 때의 고마운 친구를 잊지 못한 것이다. 담배와의 결별 고통을 경험한 터라 트웨인과 유 교수의 심정은 백번 이해가 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시행한 담뱃갑 경고그림이 담배와의 연을 끊게 할 묘책이 될 수 있을까. 구강암·후두암·폐암·발기부전·심장질환·뇌졸중 등 각종 건강을 위협하는 경고그림은 10가지다. 하지만 그런 섬뜩한 그림이 붙은 담뱃갑은 한 달 이상 잘 유통되지 않았다. 그림이 없는 기존 제품이 다 팔리지 않아서다. 그런데 설을 전후로 편의점과 소매점에 깔리기 시작했다. 종업원들의 반응이 의외다. “손님이 사자마자 담배케이스에 넣던데요. 영향이 별로 없어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 담뱃갑을 통째로 넣거나 담배만 빼서 넣는 담배케이스, 일명 ‘담배 지갑’의 역습이 거세다. ‘흡연자의 품격’을 내세운 유명 온라인 쇼핑몰에는 담배케이스 카테고리까지 생겼다. 4000원짜리부터 ‘김영란법’ 5만원 제품, 10만원 이상의 가죽제품 등 수백 가지다. 쇼핑몰 매출이 급증하자 ‘담배 지갑 문화융성’이니 ‘담배 창조경제’니 하는 비아냥이 들끓는다. 1905년 국내 최초로 궐련 담배 ‘이글’을 생산한 지 111년, 1986년 흡연 경고문구를 표기한 지 30년 만에 도입된 경고그림이 허를 찔린 것이다.

“중국에서 15만 개를 들여왔는데 물량이 달려요. 정부와 흡연자들 덕에 먹고살게 됐어요.” 수입상의 말에 가슴이 먹먹하다. 정책의 빈틈을 이렇게까지 빠르게, 그리고 쉽게 파고들 줄이야. 담배 제조·판매업자는 케이스를 못 팔도록 담배사업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일반인의 제조·판매 행위는 규제할 도리가 없다. 담배 지갑 유행은 일시적이고 곧 수그러들 것이라는 복지부의 느긋함이 놀라울 뿐이다.

담배와의 결별은 결코 쉽지 않다. 하긴 이해가 된다. 대통령 잘못 뽑은 죄로 나라꼴이 엉망이 되고, 엄동설한에 삶은 더 팍팍해지는데 헤어지기가 그리 쉬울까. 그래도 1000만 흡연자의 주머니를 턴 ‘담배 지갑 문화융성’이라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