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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의 실패, 강봉균의 예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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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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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취임 후 첫 회견인지라 이목이 집중됐다. 발언시간 18분, 이 중 3분의 2가 경제 얘기였다. 박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이 성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우리 경제의 혁신과 재도약을 위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세우고 성공적으로 이끌어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현오석 당시 경제부총리가 “2월 말까지 구체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에선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5차를 마지막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끝난 게 1986년이다. 근 30년 새 한국 경제의 양과 질이 모두 달라졌다. 그런데 새삼 국가 주도 경제계획이라니…. 그래도 대통령이 무서운 관료들은 대놓고 불만을 터뜨리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작고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대신 나섰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견 수렴을 못한 계획은 반발로 끝날 뿐”이라며 실패를 내다봤다. ‘외환위기 해결사’로 불린 그는 경제기획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근거도 분명히 댔다.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의견 수렴에만 1년 반이 걸렸다.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계획을 세운다니 깜짝 놀랐다”고 말이다. 다른 전직 장관들도 이명박 정부의 ‘747 정책(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강국)’의 재판이 될 것이란 우려를 쏟아냈다.

그래도 2년차 정권의 힘은 셌다. 2월 25일 대통령이 또 대국민 담화를 직접 읽었다. 그는 “잠재성장률을 4%대로 끌어올리고, 고용률 70%를 달성하며,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로 가는 초석을 다져놓겠다”고 다짐했다. 이른바 ‘474 정책’의 탄생이다. 대통령은 “2017년이면 청년의 취직 걱정, 여성의 경력단절 걱정이 사라지고 가계부채와 주거비 부담도 덜어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후 3년이 지났다. 성장률은 바닥을 기고 실업률·가계부채·주거비는 사상 최고다. 좋아진 건 적고 나빠진 것만 넘쳐난다. ‘474’란 말도 조용히 사라졌다. 청와대와 정부가 성적표를 내놓을 기미도 없다. 물어보면 “탄핵 상황이라…”고 말꼬리를 흐린다. 내심 다행이라는 뉘앙스까지 읽힌다. 3개년 계획은 이제 지웠으면 하는 과거가 되고 있다. “수립 과정이 ‘밀어붙이기’인지, ‘의견 수렴’인지에 따라 계획의 성패가 갈린다”던 강봉균의 예언이 적중했다. 다음 정부 정책 담당자들이 반복하지 말아야 할 ‘예정된 실패’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