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색 즐기는 골프 상남자 “장타왕 다음 목표는 자선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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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에서 통산 9승을 거둔 버바 왓슨(39·미국·세계랭킹 12위·사진)은 평범하지 않은 선수다. 그의 본명은 제리 레스터 왓슨 주니어.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아들이 전 미식축구 선수인 버바 스미스를 닮았다며 ‘버바’라고 부르면서 버바 왓슨이란 이름이 본명보다 더 유명해졌다. 왓슨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장애가 있다는 평가도 듣는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하지만 팬이나 스폰서와는 충돌하면서 구설에 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산 컬러볼 쓰는 버바 왓슨
“집 어려워 초기엔 도움 많이 받아
핑크는 자선 상징, 골프공까지 바꿔
100만달러 모아 주니어 골퍼 지원”

최근 미국 PGA 골프용품 쇼가 열린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왓슨을 만나 그의 골프 철학을 들어봤다. 그는 PGA투어에서 다섯 차례나 장타왕에 오른 ‘상남자’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좋아하는 색상은 핑크색이다. 왓슨의 골프 가방에 든 내용물도 온통 핑크 빛이었다. 드라이버 헤드는 물론 아이언 헤드에도 핑크색으로 ‘버바’를 새겨 넣었다. 클럽 샤프트와 퍼터 헤드도 핑크색이다.

왓슨은 최근 골프공까지 핑크 색으로 바꿨다. 지난 1월 초 국산 골프공 제조회사인 볼빅과 계약을 맺고 하와이에서 열린 SBS 토너먼트오브 챔피언스 대회부터 컬러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왓슨은 “지난해 말 TV로 월드 롱 드라이브 챔피언십을 시청하다가 대회 공인구인 볼빅의 컬러 볼에 빠졌다. 직접 구매해 테스트를 해봤는데 제품이 마음에 들어 내가 먼저 계약을 맺자고 연락했다”며 “올해 첫 대회에서 핑크 색 컬러 볼을 사용했는데 선수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왓슨이 핑크 마니아가 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시골마을인 바그다주 출신인 왓슨은 어린 시절 가난했다.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농장 솔밭의 솔방울을 골프공 삼아 독학으로 골프를 익혔다. 왓슨은 “가난했지만 나는 운이 좋았던 골퍼”라며 “대회에 나갈 경비가 없었지만 그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 그 때부터 자선에 관심을 갖게 됐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눠 주는 것이 내 인생에 중요한 부분이 됐다. 핑크색은 자선을 상징하는 색”이라고 말했다.

왓슨은 201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버바 왓슨 재단’을 설립했다. 이글이나 버디를 잡을 때마다 100달러를, 핑크색 드라이버로 300야드를 넘길 때마다 300달러를 기부하고 있다. 왓슨은 “100만달러를 목표로 자금을 모으고 있다. 아픈 아이들과 주니어 골퍼들을 돕는 것이 나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2011년 동료 선수인 리키 파울러, 벤 크레인, 헌터 메이헌(이상 미국)과 함께 만든 골프 보이스(Golf Boys)는 그가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과 행복을 공유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왓슨은 뮤직 비디오에서 가슴 털이 고스란히 드러난 멜빵 바지 하나만 입고 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가 하면, 산타클로스 복장을 입고 나와 어린이들을 위한 랩송을 불렀다. 왓슨은 “골프는 경기 시간이 길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코스 안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나만의 개성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왓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 왓슨은 “골프 대회에 출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입양한 두 아이와의 시간이다. 나보다 더 나은 아들, 아내보다 더 나은 딸을 키우는 것이 내 인생의 또 다른 목표”라고 했다.

올랜도=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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