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여는 금통위원들, 소통 폭 넓히는 한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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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일형 금융통화위원이 1일 서울시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통화정책과 성장, 금융 안정을 주제로 간담회를 했다.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한 과거 금통위원 간담회와 달리 강연 내용이 공개됐다. [사진 한국은행]

이일형 금융통화위원이 1일 서울시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통화정책과 성장, 금융 안정을 주제로 간담회를 했다.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한 과거 금통위원 간담회와 달리 강연 내용이 공개됐다. [사진 한국은행]

지난달 19일 오후 한국은행에서는 예정에 없던 비공식 회의가 열렸다. 함준호·이일형·조동철·고승범·신인석 금융통화위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은 이주열 총재와 장병화 부총재만 빠졌을 뿐 사실상의 금융통화위원회나 마찬가지였다. 발단은 조동철 위원이 블룸버그와 한 인터뷰였다.

그간 금기 깨고 첫 ‘정책소통’ 나서
보수적인 영란은행·일본은행도
개별 강연·발언 권장하는 분위기
“통화정책 투명성 높이는 계기돼야”

조 위원은 인터뷰에서 “경제가 더 나빠진다면 기준금리를 인하할 여지(Room for Easing)가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금기시됐던 금통위원의 기준금리에 대한 공개 발언이자 자신은 ‘비둘기파(통화정책 완화에 우호적)’란 선언이었다. 금통위는 혼란에 빠졌다. 이날 5명 금통위원은 회의를 통해 “앞으로는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개별 인터뷰는 하지 말자”고 합의했다.

1일에는 한은에서 예정된 공개 강연이 열렸다. 이일형 금통위원이 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였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 정례회의는 올해부터 연 12회에서 8회로 준다. 이에 맞춰 시장과의 소통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다. 금통위원은 두 달에 한 번 돌아가며 공개 강연을 하기로 했다. 이 위원이 ‘1번 타자’를 맡았다. 이 위원은 강연 초입부터 “소통 강화는 금통위원의 경제에 대한 시각을 좀 더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연설을 듣고서 다음번에 금리를 내리겠구나 아니면 올리겠구나 하는 결론을 절대 못 얻으실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 위원은 “누적된 저축이 부족해 금리(인하)를 통해 소비를 진작시키려 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금리 추가 인하에 부정적인 매파 시각을 드러냈을 뿐이다.

‘은둔의 금통위원’들이 변하고 있다. 시장과 소통을 확대하는 쪽으로 보폭을 넓힌다. 중앙은행이 어떤 방식으로 시장과 소통하는 게 나은지 정답은 없다. 한국의 금통위와 같은 성격의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은 시장 참가자를 상대로 다양한 강연을 한다. 이를 통해 시장은 FOMC 위원이 매파(통화 긴축주의자)인지, 비둘기파(통화 완화주의자)인지 분석하고 향후 기준금리 추이를 예측한다.

물론 위원들이 각자 다른 말을 해 시장에 혼선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지러운 말 속에서 행간의 의미를 찾아 정책방향을 예측하는 곳이 시장이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금통위 의장인 한국은행 총재만 통화정책과 관련한 발언을 했다. 금통위원의 개별 의견 개진에 대한 한은 내부의 신중론이 강해서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기준금리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개별 금통위원이 아닌 금통위 차원의 일관되고 통일된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준금리에 대한 금통위원 개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외부에 밝히는 것은 한국 경제 여건에서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다양성이 부족하다 보니 한은 총재의 말이 왔다갔다 하면 시장도 덩달아 길을 잃는다는 점이다. ‘왼쪽 깜박이(인상 신호) 켜고 오른쪽(인하)으로 간다’는 금통위의 불통 논란이 종종 불거지는 이유다.

때문에 시장에 일관된 신호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통위원의 견해를 드러내고 토론 과정을 보여주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은이 통화정책 방향을 알리는 통로는 지나치게 공식적이고 제한적이었다”며 “첫술에 배부르긴 어렵겠지만 금통위의 소통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짚었다.

폐쇄적이고 엄숙하기에는 한은 못지 않은 영란은행(BOE)과 일본은행(BOJ)도 개별 위원의 강연과 발언을 권장한다. 강 교수는 “기준금리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금통위 내부에서 제기해 받아들여지지 않은 자신의 이견도 알리는 ‘발언’이 앞으로 금통위원으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금통위원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한은 금통위원의 결정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선진국처럼 점점 확대될 수밖에 없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통위가 시장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게 통화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는 길”이라며 “금통위원 개인의 발언권이 확대되는 만큼 책임도 확실히 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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