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지역가입자 소득신고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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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7일 공개한 '국민연금 지역가입자의 소득 신고 현황'은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소득 축소 신고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험료를 내는 5백83만여명의 56%인 3백27만명이 축소 신고 의혹을 받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자영업자 소득파악을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늘리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자영업자들의 소득 축소 신고는 국민연금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세금이나 건강보험료 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축소 신고의 파장=국민연금은 노후 보험이기 때문에 보험료를 적게 내면 노후에 연금을 적게 받으면 그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 직장인에게도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현재 국민연금 직장가입자(6백50만여명)의 월 평균 소득은 1백81만여원인 반면 지역가입자(1천15만명)는 1백2만9천여원에 불과하다. 도시 자영업자로 연금을 확대한 1999년 이후 3년 이상이 지나는 동안 직장인들의 소득은 31% 올랐지만 자영업자들은 17%밖에 오르지 않았다.

특히 소득에 변동이 있다고 신고하는 지역가입자는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5백83만여명)의 25~30%선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소득 변동 자체를 신고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노후 연금을 계산할 때 직장 지역 구분 없이 전체 가입자의 월 평균 소득을 산정해 이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지난 6월 말 현재 전체 평균소득은 1백44만원이다. 직장가입자는 37만원(1백81만원-1백44만원) 줄었고 지역가입자는 41만원가량 늘었다.

노후 연금액에서도 직장이 손해를 보고 지역이 득을 보게 된다. 국민연금에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기 때문에 벌이가 나은 직장인이 농어민이나 도시 빈민을 돕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인이 벌이가 괜찮은 도시 자영업자까지 돕는 것은 문제다.

전체 평균소득은 99년에는 1백27만원이었다. 자영업자의 축소 신고 때문에 이 평균액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내년부터 월평균 소득 등급표를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소득이 높은 등급(45등급, 월소득 3백60만원 이상)을 4백만원선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

문제는 45등급 가입자 93만4천여명 중 90%가 직장인이라는 점이다. 부담은 느는데 연금 수령액은 그만큼 늘지 않게 된다. 이래저래 직장인들이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문제점은 없나=복지부와 연금공단이 개발한 추정소득 모형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99년 4월 연금을 도시자영자에게 확대할 때 이를 적용하려다 가입자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른바 '연금파동'의 원인이 됐다. 당시 정부는 대신 가입자가 신고하는 소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행 시스템으로 바꿨다.

정부는 당시 모형을 훨씬 정교하게 보완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는 감이 있다.

현 모형을 시범적으로 운영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한 뒤 전면 시행해도 늦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영업자 소득파악이 중요하긴 하지만 절차와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뒤 문제가 없으면 법에다 추정소득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를 담으면 모양새가 훨씬 좋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사정도 문제다. 정부 모형에 사용된 공시지가나 과세소득은 2001년 자료다. 당시에는 경제가 좋은 편이었다. 2년 사이에 자영업자의 벌이가 차이날 수밖에 없다. 올해는 특히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자영업자가 많다. 때문에 적용 시점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금공단 가입자관리실 이종신 팀장은 "일부 문제점이 있지만 정부의 공식 자료는 2년 전 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가입자와 협의 과정에서 최근의 영업 악화 등을 최대한 반영해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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