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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근무 경험 없던 유재경 발탁, 외교부도 놀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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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1일 특검 조사에서 최순실씨의 추천으로 대사직에 임명된 사실을 시인한 유재경 주미얀마 한국 대사는 내정 당시부터 석연치 않은 인사라는 의혹을 받았다.

대사 유력했던 외교부 국장
요리사 채용까지 나섰는데 교체
“청와대 추천 특임공관장 임용”

유 대사 내정이 확정된 것은 지난해 3월 10일이었다. 외교부 안팎의 인사들이 모두 놀란 깜짝 발탁이었다. 직전까지만 해도 외교부 본부에서 근무하던 A국장이 미얀마 대사로 임명될 것이란 소식이 확정적으로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현지 공관에서 함께 생활할 요리사 채용 절차도 시작한 상태였다.

유 대사는 삼성전기에서 유럽과 중남미 지역의 법인장을 했을 뿐 미얀마 근무 경험은 없어 외교가에선 뒷말이 많았다. 유 대사의 내정으로 당초 미얀마 대사로 거론되던 A국장은 동남아 지역의 다른 나라 대사로 임명됐다. 외교부는 당시 유 대사가 발탁된 상세한 배경을 밝히지 않았다. 이에 기자들은 당국자에게 인선 경위에 대해 상세히 물었지만 “유 내정자가 해외 근무를 오래 하면서 시장 개척 분야 등에서 활동했는데 그런 부분들을 고려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유 대사는 특임공관장 몫으로 내정된 것이었다. 외무공무원법에 따르면 공관장 인사권자인 대통령은 외교업무 수행에 필요한 경우 직업 외교관이 아닌 사람을 특임공관장으로 임명할 수 있다. 현재 특임공관장 수는 15명이다.

관련 사정에 정통한 외교가 소식통은 31일 기자들과 만나 “특임공관장은 외교부 장관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추천하거나 극소수이지만 청와대가 직접 추천하는 경우도 있다”며 “유 대사의 경우엔 청와대 추천으로 임용 절차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유 대사를 추천한 시기는 지난해 2월 말에서 3월 초였다고 한다. 약 열흘 만에 내정자가 뒤바뀐 것이다.

직업외교관이 공관장으로 나가는 경우엔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 다면평가, 평판조사, 업무실적 평가 등을 종합해 점수를 내고, 하위 20%의 경우 개별 심사를 한다. 이후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검증을 받는다. 반면 특임공관장의 경우 대부분 서면 심사로 대체한다.

지난해 가을부터 최순실씨의 대사 인사 개입설이 나오면서 외교부는 유 대사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지만 유 대사는 “최씨를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31일 정례브리핑에서 유 대사의 인선 과정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외교부로선 아는 바가 없다”는 답만 반복했다. 외교부는 추후 특검 조사 결과와 대사로서 원활한 직무 수행이 가능한지 등을 따져 유 대사에게 인사 조치를 취할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최씨가 추천한 또 다른 대사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대주 전 주베트남 대사 역시 청와대에서 직접 추천한 특임공관장 후보였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부 관계자는 “대사는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인데 여기까지 비선에서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다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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