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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귀성길 숨겨진 패턴 알고 가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33조4000억원. 한국교통연구원이 추산한 2015년 국내 교통혼잡비용이다. 경제효과 없이 도로 위에 뿌려지는 돈인 교통혼잡비용은 매년 3~4% 증가하는 추세다. 교통 체증으로 고속도로 곳곳이 꽉 막히는 명절 연휴 무렵이면 교통혼잡비용은 최고치를 기록한다. 멈췄다 달렸다를 반복하는 정체 구간을 만나면 고향을 향한 마음만 앞설 뿐이다.

쓰나미 충격파, 나비효과, 보이지 않는 물결

교통 체증이 반복되는 원인은 뭘까.미국 자동차보험협회는 교통 체증 원인으로 도로 공사, 오르막길을 꼽는다. 운전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접촉사고로 꽉 막힌 도로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협회가 제시하고 있는 원인들로 설명할 수 있는 교통 체증은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터널·오르막 구간도 아닌 직선 도로에서, 교통사고 등 특별한 원인도 없이 차량이 쭉 늘어선 교통 체증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만난다. 명절 연휴 고속도로도 예외가 아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두고 ‘유령 체증(phantom traffic jam)’이라 부른다. 뚜렷한 원인을 밝히지 못한 현재 상황을 유령에 빚댄 것이다.

반응시간지체(reaction time delay)는 유령 체증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 영국 엑서터대-헝가리 부다페스트대 공동 연구팀은 2006년 왕립학술원 학회보에 운전자들의 반응시간지체가 유령 체증을 일으킨다는 논문을 게재했다. 반응시간지체는 고속도로에 갑자기 등장한 저속 트럭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나들목에서 진입한 저속 트럭을 뒤따르는 운전자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속도를 줄인다. 앞차가 감속하면 뒤차 운전자는 그보다 더 큰 폭으로 속도를 줄이게 된다. 이런 흐름이 누적되면 무리의 맨 뒤차는 아예 멈춰 서게 된다.

흥미로운 건 교통 체증이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해변으로 몰려드는 쓰나미처럼 차량 행렬 뒤쪽으로 꾸준히 전파된다는 것이다. 이를 후방 충격파(backward shock wave)라 부른다. 쓰나미가 지면을 훑고 가면서 차례로 가옥을 파괴하듯 교통 체증 역시 차량 흐름 뒤로 꾸준히 이어지면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가보 오로즈 박사는 “교통 체증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교통 흐름에 따라 전파된다”고 설명했다.

유령 체증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론은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작고 경미한 바람이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한다는 것으로 1960년대 무렵 기상학에서 처음 등장했다. 흐름에서 어긋난 차량 한 대가 고속도로 위 교통 체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비효과는 유령 체증은 물론 사고나 도로 공사 등 원인이 뚜렷한 교통 체증을 설명하는 기초적인 이론이다.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 이승준 박사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란 속담처럼 도로 위에 유령은 살지 않는다”며 “앞차가 졸음이나 휴대전화 사용으로 1~2초 멈칫거리면 뒤차는 속도를 줄이거나 차선을 바꾸는 등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호작용은 뒤로 갈수록 확산된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물결(invisible waves)과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도 교통 체증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보이지 않는 물결은 도로 위에 멈춰 선 차량이 모두 움직이기 전까지 교통 체증이 계속된다고 설명한다.

교통 체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국내 고속도로 교통 체증에 숨겨진 패턴을 알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승준 박사는 “4차선 고속도로를 가정하면 나들목과 저속 차량이 집중된 4차선에서 체증이 시작되고 차량 이동량이 가장 많은 1차선으로 전파된다”며 “2, 3차선은 상대적으로 체증이 시작되는 시간이 느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통 체증이 시작되는 지점에선 2, 3차선을 선택하는 게 체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시작점이 아닌 곳에선 이 같은 선택이 의미가 없다. 앞선 운전자들이 덜 막히는 도로를 이미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각한 교통 체증이 이어지는 도로에서 차로를 변경한다고 해서 남보다 앞서가긴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10월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는 엔지니어 윌리엄 비티의 연구를 인용해 충분한 차간거리를 유지하면 유령 체증을 물리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앞차와의 차간거리를 충분히 넓히면 다른 차가 끼어들어도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되고 이에 따라 반응시간지체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trafficwaves.org)에 연구 결과를 공개한 비티는 “앞선 차의 뒤꽁무니를 쫓는 건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렇게 하면 교통 체증이 유발될 수밖에 없고 나를 포함한 운전자 모두가 목적지에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과 중국에선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교통 체증을 줄이기 위한 차간거리 유지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충분한 차간거리 유지는 안전 운전에도 도움이 된다. 도로교통공단 정의석 교수는 “고속도로 정속 주행 시 앞차가 지나친 동일 지점을 4초 후에 지나가야 충분한 차간 거리가 확보된 것이고 정체 시에는 앞차의 뒷바퀴가 보여야 한다”며 “빈번한 차선 변경이 빠른 목적지 도착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실험과 연구를 통해 증명된 결과”라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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