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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피플] 히말라야 세 영웅 … 북한산 上峯서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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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나이가 함께 북한산에 올랐다. 엄홍길(43.파고다외국어학원).박영석(40.영원무역).한왕용(37.한고상사). 이들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의 해발 8천m 이상 고봉 14개를 모두 정복한 영웅들이다.

막내 한씨는 지난달 15일 브로드피크(8천6백11m)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14좌(座) 완등클럽에 갓 합류했다. 14좌를 모두 오른 알피니스트를 아시아에선 한국이 유일하게, 그것도 세명이나 탄생시킨 것이다. 등반 선진국인 미국.영국.일본도 아직 못 이룬 꿈이다.

"히말라야를 오르락내리락 했는데 북한산 정도야 거저 아닙니까?"

기자가 농반 진반 묻자 엄홍길 대장이 씨익 웃으며 일침을 놓았다. "아무리 야트막한 산이라도 절대 얕보면 안되는 겁니다."

지난 5일 오전 5시30분, 세 산사나이와 함께 북한산을 올랐다. 인수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중턱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인수봉을 오르다 사고를 당해 꽃잎처럼 스러져간 영혼들을 달래는 추모비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다들 숙연해졌다.

히말라야의 세 거인이 이처럼 한 자리에 모인 건 드문 일이다. 남들은 하나 오르는 것도 힘들다는 8천m 고봉 14개를 모두 정복한 이들에게 다짜고짜 "왜 산에 가느냐"는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세 사람 모두 너털웃음으로 넘겨버린다. 사실 이것만큼 산악인들에게 곤혹스러운 질문도 없다.

-히말라야 등반은 생명을 내놓다시피 하는 한계상황의 연속일텐데, 이제까지 원정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엄)"안나푸르나 원정(1998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캠프3에서 크레바스에 빠지는 셰르파를 구하려다 발목이 1백80도 돌아가는 중상을 입고 3일 낮밤을 진통제로 버티며 기어 내려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쳐지네요."

(박)"95년의 에베레스트 남서벽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7천m에서 1백50m를 추락하면서 안면이 뭉그러질 정도의 중상을 입었지요. 캠프2(6천5백m)에서 미국원정대의 팀 닥터였던 마이클 싱클레어(흉부외과 전문의)에게 마취없이 현장에서 수술을 받아 목숨을 건졌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크레바스에 몸을 던져 죽고 싶다는 충동까지 일었지요."

(한)"고봉 등정 후유증으로 귀국 후 뇌수술을 받았지요. 2000년 여름 K2 원정 때 산소부족으로 생긴 후유증이었는데, 네차례에 걸쳐 막힌 뇌정맥을 뚫는 대수술이었지요. 그 때문인지 기억력이 흐릿해진 것 같아요. 한차례 원정을 다녀오면 전화번호나 사람들의 이름을 자주 잊어버리게 되는데, 아마 히말라야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요."

이들은 등반 역사가 일천한 한국이 14좌 완등자를 세명이나 배출한 데 대한 자부심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박대장이 나섰다. "우리 얘기라 쑥스럽긴 하지만, 세계 산악계에서는 하나의 사건이자 '살아있는 신화'라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막상 국내 언론들은 시큰둥해하는 것 같아 섭섭하더군요. 한국인의 기상을 세계에 떨치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것만도 어딘가요. 더구나 요즘처럼 답답한 세상에..."

엄대장도 "62년 미국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하고 귀국하자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공항까지 나와 '당신들은 미합중국의 위대한 영웅'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며 거들었다. 그는 "8천m의 벽과 6천m의 벽을 오르는 것은 천지 차이"라며 "6천m에서 세번의 망치질로 하켄을 박을 수 있다면 8천m에서는 열번은 두들겨야 할 정도로 힘들다"고 말했다. 7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초등에 성공한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과 더그 스코트 일행이 그 후 6천m 벽 이상은 등반을 피한 것도 이런 어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이건 정말 궁금한데요. 정상에 오르면 무슨 생각이 납니까.

(엄)"아무 생각없지요. 10여시간 동안 먹지도 못하고 오르니 거의 탈진 상태가 됩니다. 게다가 눈보라가 몰아치고 기상이 악화되면 몇 분도 서있지 못하죠. 다행히 날씨가 좋을 때는 발 아래 펼쳐진 히말라야의 산군(山群)을 내려다보며 뿌듯한 마음에 가슴을 터질 듯합니다. 물론 무사히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쫓기지만."

(박)"형도 마찬가지겠지만, 정상에 오르는 순간에는 안에서 무엇인가가 북받쳐 오르는데, 어떤 때는 눈물도 나지요. 99년 봄 칸첸중가(8천5백86m)를 등정하고 내려오는 길에 상황이 여의치 않아 비박했는데, 그땐 '살아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어요."

(한)"죽을 고비를 넘기면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정상에 오르면 정말 기뻐요. 그리고 저는 엄청난 겁쟁이예요. 겁쟁이라서 큰 사고 없이 완등을 했나 봐요."

이들이 히말라야 원정을 떠나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다. 엄대장은 34번의 원정에서 18번, 박대장은 31번 중 18번을 성공했다. '불가능한 꿈은 없다'의 공동저자 딕 배스가 "인간은 쉬운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어려운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비로소 성장한다"고 말했듯 이들도 오늘이 있기까지 숱한 좌절을 겪었다.

8천m급 고산 등정은 산소와의 전쟁이다. 폴란드의 산악인 보이테크 쿠르티카도 "등반은 인내의 예술"이라고 말했던가.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 움직이는 일은 그 자체가 고통이자 인내력의 시험대다. 더구나 무산소로 8천m 고산을 오르면 하늘이 온통 노란빛으로 보일 정도다. 단순히 체력이나 등반기술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세 사람의 등반 스타일이 요즘 세계 산악계의 추세인 '등로(登路.새로운 코스 찾기)주의'가 아니라 '등정(登頂)주의'에 치우친 것 아니냐는 일부 시각에 대해 묻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리가 8천m 고봉을 오른 것을 보고 만만히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말도 안됩니다. 히말라야가 어디 뒷동산 오르는 건가요. 그곳에 올라보지 못한 사람들은 말할 자격조차 없어요. 강풍이 몰아칠 때는 엎드려 있기조차 힘듭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끝장이고, 그래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드는 곳입니다." 박대장은 "등로주의와 등정주의를 따지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운 생각"이라고 일축했다.

14좌를 모두 오르는 데 엄대장은 12년, 박대장은 8년, 한대장은 10년이 걸렸다. 대단히 짧은 도전 기간에 속한다. 유럽에서 근대 산악활동(알피니즘)이 태동한 지 2백여년이지만, 한국은 고작 60여년에 불과하다. 세 영웅이 다시금 올려다보였다. "인생요? 등산이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쉴틈없이 도전하다 보면 어느새 내 발아래 놓여 있는 그런 거. 또 그런 순간이 지나면 내리막길에 더욱 조심해야 하는 거." 엄대장의 말을 들으면 산사나이들은 철학자이기도 한 모양이다.

김세준 기자
박종근 기자

*** 한왕용

▶전북 군산(37) ▶179㎝.72㎏ ▶초오유(1994), 에베레스트(1995), 로체.다울라기리.가셔브럼Ⅰ(1997), 낭가파르밧.안나푸르나(1998), 마나슬루.K2.마칼루(2000), 시샤팡마(2001), 칸첸중가(2002), 가셔브럼Ⅱ.브로드피크(2003)

*** 엄홍길

▶경남 고성(43) ▶168㎝.67㎏ ▶에베레스트(1988), 초오유.시샤팡마(1993), 마칼루.브로드피크.로체(1995),다울라기리.마나슬루(1996), 가셔브럼Ⅰ.Ⅱ봉(1997), 안나푸르나.낭가파르밧(1999), 칸첸중가.K2(2000)

*** 박영석

▶서울(40) ▶175㎝.73㎏ ▶에베레스트(1993), 초오유.시샤팡마(1994), 안나푸르나(1996), 다울라기리.가셔브럼Ⅰ.Ⅱ봉.초오유(1997), 낭가파르밧.마나슬루(1998), 칸첸중가(1999), 마칼루.브로드피크(2000), K2(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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