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드라마 ‘서울 1945’서 비련의 여주인공 맡은 한·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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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태성 기자]

아무리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TV화면에서 이 여자의 변신은 조금 당혹스럽다. 드라마.광고에서 도회적 세련미를 뽐내던 한은정(26). 그가 치마 저고리를 입었다. 그뿐만 아니다. 코카콜라.고소미 광고에서의 섹시하고 도발적인 이미지는 간데없고, 두 눈에는 한 남자를 향한 순정으로 가득하다.

그는 올 초부터 방영된 KBS 대하드라마 '서울 1945'에서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 고난의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여주인공 김해경 역을 맡았다. '남자의 향기'(MBC.2003년) 이후 두 번째 드라마 주연이다. 한은정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양면성'을 갖춘 배우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다.

"기존의 도회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감정을 깊게 실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껏 해왔던 트렌디 드라마 제의를 뿌리치고 시대극을 택했습니다."

'양면성'이란 말에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도회적 세련미'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녹아있다. "그런 이미지를 선망하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죠. 하지만 그에 안주하는 연기자가 되고 싶진 않아요. 시대극과 현대극을 모두 소화해 낼 수 있는 연기자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연기 변신을 위한 첫 작품치고는 주제가 다소 무겁게 느껴진다. 해방 직후 치열한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좌파의 길로 접어들고, 결국 '빨치산'으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 운명을 그가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촬영 전 소설 '오싱'도 읽고, 나름대로 감정연기를 위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드라마의 주제가 이데올로기가 아닌,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젊은이들의 사랑과 야망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감독님도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 사랑 때문에 목숨을 바치는 한 여성의 스토리니까 연기하면서 감정에 몰입해 가면 된다'고 주문하셨어요."

지금껏 한은정이 보여준 연기는 첫회 한국전쟁 발발 직후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보여준 표정연기가 전부다. 연기 변신의 가능성이 보였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정작 본인은 눈빛 연기가 조금 부족했다는 자책을 한다.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해경을 같은 여자로서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사랑에 공감합니다. 한 사람을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일편단심 민들레라고 하나요? 가벼운 인스턴트식 사랑 말고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어요."

한은정은 아역 연기가 끝나는 7회(28일)부터 드라마에 다시 등장한다. 본격적인 연기검증의 무대에 서는 것이다. "잘 해내지 못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진짜 연기자로 거듭나기 위해 모험을 하는 겁니다. 당초 감독님이 제안했던 친일파 부잣집 딸 문석경 역(소유진 분)을 거절하고 해경 역을 맡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글=정현목 <gojhm@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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