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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피해자더러 잊으라고요?” 여성인권 앨범 낸 뮤지션 야야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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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인·강송연

“당신의 편이라고,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싱어송라이터 야야(夜夜)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EP앨범 ‘Scarlet Shoes’는 여성인권을 주제로 한 앨범으로 화제가 됐다. 야야는 이번 앨범 소개에 “어디선가 외롭게 세상과 싸워가며 차가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을 많은 여성들에게 음악으로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썼다.

이번 앨범에는 주제에 맞는 기 발표작과 가정 폭력 피해 여성의 이야기인 단편영화 ‘다홍신’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며 만든 곡이 들어갔다. 타이틀곡인 ‘Scarlet Winter’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억울함과 분노를 모티브로 삼았다. 야야는 TONG의 인터뷰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누군가가 용기를 내서 행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여성인권’을 주제로 한 EP앨범을 만든 이유는요.
“단편영화 ‘다홍신’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는데, 그 영화가 가정폭력으로 눈을 잃은 한 여자의 이야기예요. 전부터 여성인권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특히 그 작업을 하다 보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 여성인권을 너무 침울하게만 표현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어요.
“여성인권의 모든 걸 다룰 순 없어요. 저는 성범죄 피해 생존 여성들에게 위안을 주고자 했어요. 그들에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같은 막연한 긍정보다는 ‘당신 편이에요’ ‘공감할 수 있어요’ ‘울고 싶다면 이 노래로 마음껏 울어요’라고 하고 싶었어요. 침울하고 어두워서 불편하다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피해 생존자 여성들은 음악에서 느껴지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외롭고 어두운 감정들을 느꼈을 거라는 걸요.”

-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었다면.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에게 심한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나중에 10년이 지나서야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그 얘기를 할 수 있었어요. 같은 피해자들끼리요. 학교 다닐 때 ‘너 홀딱 벗겨서 때리고 싶다’고 말한 선생도 있었어요.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그 사람은 지금 다른 학교에서 교장이 됐대요. 그때 억울했던 게, 제 편이 없는 거였어요. 이 노래들이 ‘네 편’이라고 위로하는 대상은 저 자신이기도 해요.”

-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이 있어요.
“그런 얘기를 하면 주변에서 그러잖아요. ‘괜찮아 힘내’ ‘잊어버려’라고.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면 ‘너희가 잘 몰라서 그런다’고 하죠. 저는 그런 말들이 더 힘들었어요. 그렇게 참으라는 얘기들 하잖아요? 마음으로 그랬어요. ‘X까’. 차라리 같이 울어주기라도 했으면 싶었죠. 이 앨범은 그런 마음을 담은 거예요.”

[사진제공=야야]

[사진제공=야야]

- 인터넷에선 '여성인권'이라는 말에 무조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앨범을 내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제가 페미니즘과 관련된 내용들을 포스팅한 걸 본 어떤 팬이 ‘그런 얘기는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 반응에 제가 상처 받을까봐 걱정한 거였어요. 그 말처럼 정말 조용히 있을까 생각도 했는데, 결국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사진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인 티나 모도티의 자서전이 힘이 됐어요. 그녀의 용기와 열정에 감명을 받았죠. 제 활동을 보고, 제 음악을 듣고 ‘나도 야야처럼 용기를 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분들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 음악의 메시지로 관심을 많이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음악적인 부분은 주목을 덜 받는 것 같아요.
“전에는 어떤 얘기를 하는지도 화제가 되지 않았는걸요. 그래도 이번엔 여성인권이라는 주제라도 알려졌잖아요. 오히려 한 곡 한 곡의 메시지를 더 많이 알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편의점에 가는 것조차 무서울 수밖에 없는, ‘밤산책’의 자유가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산책’)나, 폭력 트라우마(‘기억이라는 창살’) 등을요."

스튜디오에서 곡 작업을 하는 야야(위)와 그에게 영감을 준 티나 모도티의 자서전. [사진=야야 페이스북]

스튜디오에서 곡 작업을 하는 야야(위)와 그에게 영감을 준 티나 모도티의 자서전. [사진=야야 페이스북]

- 자신의 경험을 음악에 많이 반영하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도 그렇고요.
“거의 100%죠. 그래서 힘들어요. 앨범 작업을 하는 게 출산 과정과 비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고통을 비교할 순 없겠지만. 앨범을 준비하면서 책이나 영화를 참고해서 ‘태교’도 하거든요. 작업에 들어가면 내 인생의 경험과 기억을 다 꺼내서 정리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다 소진되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결과물을 내놓고 나면 우울증 증상과 비슷한 뭔가가 와요. 산후우울증처럼요.”

- 여성인권을 비롯해서, 뮤지션들의 사회적인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이번 앨범 전에도 사회적인 메시지들을 담아왔어요. 저의 관심사가 사회 문제와 맞닿아 있더라고요. 그러나 ‘뮤지션의 역할’이라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어떤 분야의 예술인이든 그들이 어떤 주제를 다룰지는 자유입니다. 권력집단을 비판할 수도 있고,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죠. 저는 뮤지션이라는 분류 이전에 여성인권에 관심을 가진 여성으로서, 음악이라는 기능으로 그걸 표현한 거예요.”

- 청소년들도 사회 문제에 의견을 많이 밝히고 있어요. 조언해 주신다면.
“사실 청소년들이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 자체가 멋지다고 생각해요. 저희 세대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대통령이 누군지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거든요.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네요. 어떤 조언을 하기보다는, 응원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 뮤지션 야야의 이후 계획은?
“일단 지난해 초에 계획했다가 계속 미뤄지고 있는 정규 3집을 꼭 내려고 해요. 소속사 없이 이제까지의 작업 중 가장 적은 예산으로 하고 있는데, 공은 가장 많이 들이고 있어요. 그 이후에는, 하고 싶은 많은 것들 중에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해나가려고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요.”

글=오수인·강송연(숭덕여고1) TONG청소년기자
사진=안별이(서강대1) TONG청소년기자
도움=박성조 기자 park.sung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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