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승 파문으로 본 청와대 유혹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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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문학진(文學振)정무1비서관은 최근 지인(知人)의 소개로 건축업자 한명을 만났다가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받았다. 이 업자는 "부산에 수천억원대의 공사대금을 투입해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지으려 하는데 인.허가 문제 등에 힘을 써달라. 이익금만 수백억원이 될 텐데 도와주면 그중 상당액을 내놓겠다"고 했다.

文비서관은 한마디로 "안 된다"고 거절했으나, 이후에도 이 업자는 지인을 통해 집요하게 연락을 시도했다고 한다. 文비서관은 "청와대에 들어 온 뒤 이런 일이 몇 차례 더 있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A행정관도 얼마 전 모 기업 관계자로부터 스폰서가 돼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후배들 술사 줄 일이 많을 테니 강남 쪽에 술집 한군데를 찍어라. 그러면 내가 법인카드로 계속 결제해 주겠다"는 요지였다. A행정관 역시 제의를 사양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털어놓은 이 같은 체험담은 아직까지도 청와대가 로비의 집중타깃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양길승(梁吉承) 전 제1부속실장의 향응파문도 결국 본질은 로비의 덫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일단 梁전실장 향응 파문의 전모를 공개한 청와대는 사태가 진화되길 기대하고 있으나 여러 갈래의 여진으로 분위기는 여전히 뒤숭숭하다.

특히 관계자들의 거짓해명이 부각되고, 금품수수 여부 등에 의문이 지적되고 있어 당혹스러움이 더하고 있다. 유인태(柳寅泰)정무수석은 "사건을 감추려고 했다니 말이 되느냐"며 "세상이 얼마나 투명해졌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흥분했다.

언론의 문제제기가 없었으면 진상이 파묻혔을 가능성이 큰 데도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지난 2일 국정토론회에서 언론 때문에 梁실장을 해임하진 않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오히려 청와대의 자체 초기조사에서 술값 2백15만원, 국화베개 등의 선물, 청탁 로비 등이 있었음을 규명하지 못하는 등 감찰기능에 문제를 드러냈음에도 언론에 화살을 돌린 것은 납득키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근 청와대 내에서 "모르는 사람과는 술자리를 하지 말자" "단란주점 갈 때는 몰카를 조심하자"는 얘기가 자주 나오는 것도 '양길승 쇼크'의 파장으로 꼽힌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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