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 2035

‘탈조선’만 답은 아닐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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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 현  사회2부 기자

이 현
사회2부 기자

스웨덴에 사는 30대 지인 A씨의 테라스엔 고깃집 테이블이 있다. 식탁 한가운데 뚫린 불구멍과 속칭 ‘후앙’이라 부르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원통형 환풍구까지 완벽한 삼겹살집 풍경이다. A씨와 스웨덴인 남편이 직접 서울 청계천에서 소품을 공수해 설치한 ‘작품’이다. 스웨덴은 식당에서 손님 앞에 불을 두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한국식 고깃집을 열 수 없다. 궁여지책으로 만든 삼겹살집 식탁에 근처에 사는 한인들과 둘러앉아 불판에 돼지고기를 굽고 직접 기른 깻잎에 한 점 올려 먹으면 여기가 스웨덴인지 한국인지 헷갈린다.

이런 소소한 행복을 위해 테이블을 깎고 텃밭을 가꾸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것은 “김치 없이 못 사는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다. 여행 가면 한 끼는 무조건 한식당에서 먹어야 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김치 없이도 한 달은 너끈히 버틴다. ‘DIY 삼겹살집’은 우울증에 빠지지 않으려는, 행복해지려는 그의 필사적인 노력이다.

북유럽의 겨울은 굉장히 음울하다. 아침 9시가 넘어야 빼꼼 해가 비친다. 쨍한 햇빛은 기대하면 안 된다. 그나마도 6~7시간 만에 빛은 끝나고 어둠이 다시 찾아온다. 오후 4시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 다시 해가 뜰 때까지 가족과 긴 밤을 버틴다. 필자도 출장 때문에 덴마크에 보름 남짓 체류하는 동안 문득 외로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열흘쯤 지나니 다른 기자들도 “저녁이면 외로움이 예기치 못하게 훅 찾아든다”고 털어놨다. 여름에는 반대로 밤 11시가 돼도 해가 지지 않는다. 이런 극단적인 환경 때문에 우울증이 감기처럼 흔하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도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비결이 무엇일까. 덴마크에서 만난 20대 교민 B씨는 대학생 때 ‘행복이란 무엇일까’란 고민을 안고 처음 덴마크를 찾았다. 기차를 타고 덴마크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덴마크 사람 모두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부모님이 있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등 아주 평범한 이유들로 행복하다고 답했다.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힘이 덴마크를 행복지수 1위의 나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또 그 행복에 대한 뚜렷한 주관이 평균 85%에 달하는 투표율을 이끌고, 평범한 국민이 행복한 시스템을 만든 것 아니겠는가.

얼마 전 어느 취업포털 사이트가 조사했더니 성인 중 70.8%가 “기회가 된다면 이민을 갈 의향이 있다”고 ‘탈조선(헬조선을 탈출한다는 의미)’을 희망했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이건 아니다” 싶은 2016년이 가고 새로운 5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택해야 할 2017년이다. 부디 올해는 나도, 당신도 행복에 대한 답을 안고 투표장에 가게 되길.

이현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