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림 사건' 게이트로 번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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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식 차장 비서 자살
결백 주장이냐 경찰조직 보호냐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인가, 아니면 '조직 보호'를 위한 자기 희생인가.

강 경위는 유서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강하게 주장했다. 윤씨 측근 인사인 박모씨 계좌로 돈을 보낸 것에 대해 "그 돈은 최 차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동안 차장님께 받은 용돈을 모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차명계좌를 이용한 것도 비상금 확보 수단에 불과할 뿐 불법적 의도가 없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강 경위는 자신이 범죄 피의자인 것처럼 비칠 수 있는 검찰 수사에 불만을 품고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지만 어린 두 딸(10.12세)을 둔 가장이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았다고 자살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있다. 자신의 주장처럼 ▶윤씨와 돈거래를 한 적이 없고▶부정하게 돈을 모으지 않았다면 굳이 소환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도 "피의자도 아니고 참고인으로 소환된 사람이 자살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 일각에서는 최 차장 등 경찰 간부들을 향한 검찰 수사가 강도를 더해가자 경찰조직 보호를 위한 공명심 때문에 자살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강씨는 특히 유서에서 '더러운 검새'니 '검새들 앞에 가기 싫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검찰에 강한 적의를 드러냈다. 또 평소 우직한 성품으로 알려진 강 경위가 최 차장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강씨가 누군가로부터 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충동적으로 자살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윤씨에 돈 준 사람들은
인사 청탁이냐 단순 채무관계냐

이번 사건의 의혹은 대부분의 인사가 윤씨에게 돈을 보낸 점이다. 검찰은 당초 윤씨가 이들에게 돈을 대주며 로비를 벌인 의혹을 밝히기 위해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윤씨의 금품 로비를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윤씨에게 돈을 보낸 인사는 대부분 "단순한 채권.채무관계"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윤씨가 "재테크를 해주겠다"며 고위 공직자들을 상대로 펀드 형태로 돈을 모았거나,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등을 미끼로 돈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 조사 결과 윤씨는 건설회사 회장 직함을 이용해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대중 정부 때 정권의 실세인 것처럼 행세해 온 윤씨가 "좋은 곳으로 보내주겠다"며 인사청탁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검찰 수사에서 윤씨가 경찰 중간간부로부터 징계를 무마해 주는 조건으로 수천만원의 돈을 챙기기도 했다. 또 윤씨에게 돈을 준 변호사들의 경우 사건 알선을 해준 데 대한 사례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윤씨가 강원랜드 등에서 도박으로 날린 돈을 만회하기 위해 일부 인사들에게는 개인적인 약점을 이용해 돈을 받아 챙겼을 공산도 크다고 말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윤씨가 실세인 것처럼 행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주 질이 안 좋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출입기록 비공개
사생활 보호냐 고위층 연루됐나

윤씨 사건을 둘러싼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윤씨의 청와대 출입기록 공개 여부가 쟁점이다. "기록을 내놓으라"는 한나라당의 요구에 청와대가 "불가"로 맞서고 있다.

한나라당은 22일엔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 두 명이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제보가 있어 확인 중"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윤씨가 구속되기 직전 청와대 인사와 나눴다는 통화 내역을 공개하든지, 출입기록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놨다.

청와대는 완강하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청와대 출입기록을 조사해 봤지만 윤씨가 출입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윤씨가 청와대 고위 인사와 통화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선 "통화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출입기록 비공개와 관련, 홈페이지에 띄운 글에서 "구체적인 사실과 혐의를 명시하지 않은 채 출입기록을 요구하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고, 그 목적이 안건 심의나 국정감사.국정조사 등과 관련성이 없기 때문에 제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야당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지난해 출입기록을 선별 공개한 적이 있다. 행담도 사건 당시 청와대 인사 연루설이 비등하자 해명 차원에서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과 정찬용 당시 인사수석의 면담 사실을 공개했다.

이정민.장혜수.문병주 기자

◆ 브로커 윤상림씨=54세. 고교 중퇴 뒤 세운상가에서 기름장수를 했다. 1980년대 군 장성들에게 접근, 군납 등 이권에 개입했다. 이후 검찰.경찰.정치인으로 인맥을 넓혔다. 현재 지리산 스위스관광호텔 회장.

◆ 최광식 경찰청 차장=57세. 1999년 청와대 하명사건을 수사하는 사직동팀 팀장을 맡아 옷로비 사건을 내사했다. 서울경찰청 차장, 경찰청 경비국장, 전남경찰청장 등을 거쳐 지난해 경찰청 차장에 올랐다.

◆ 강희도 경위=40세. 1990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지난해 경위로 특진했다. 99년 당시 최광식 사직동팀 팀장을 만났고, 옷로비 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았다. 이후 그의 수행비서로 줄곧 일해 왔다. 부인과 두 딸이 있다.

*** 바로잡습니다

1월 23일자 1면 '윤상림 사건 게이트로 번지나'의 '최광식 차장 비서 자살'기사 중 "강씨가 특히 유서에서 '더러운 검새'…적의를 드러냈다"는 부분에서 '강씨가'는 '강씨는'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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