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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 낙관 없는 그림을 더 사랑한 미술사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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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사제의 인연으로 만나 소장품 전시까지 하게 된 명지대 미술사학과 사람들이 무낙관 그림과 질그릇을 배경으로 모였다. 왼쪽부터 윤용이·이태호 석좌교수, 리우식 대표, 유홍준 석좌교수. [사진 박종근 기자]

사제의 인연으로 만나 소장품 전시까지 하게 된 명지대 미술사학과 사람들이 무낙관 그림과 질그릇을 배경으로 모였다. 왼쪽부터 윤용이·이태호 석좌교수, 리우식 대표, 유홍준 석좌교수. [사진 박종근 기자]

윤용이(70)·유홍준(68)·이태호(65) 석좌교수는 명지대 미술사학과의 청동정(靑銅鼎)이라 불린다. 든든한 세발솥처럼 2002년부터 과를 세우고 이끌어온 학문 도반(道伴)이다. 명지대에서 한솥밥을 먹기 전에 각기 원광대, 영남대, 전남대에서 일하던 세 사람은 한 달이 멀다고 전국 유적지답사와 고미술 전시회에서 만나 한국미술사의 사각지대를 돌파하자며 의기투합했다. 강의료와 원고료를 아껴 일반 수집가들이 외면하는 질그릇과 화가 이름 없는 그림을 산 까닭도 기존 시각을 깨려는 시도였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3인 컬렉션전
윤용이·유홍준·이태호 석좌교수
“홀대 받지만 미술사 바탕 된 것들
원고료 아껴 일부러 찾아가 구입”
제자 갤러리 개관전에 애장품 내놔

“선생님 나오십니까.” 16일 오후 서울 성북로 31길 리홀(Rheehall) 아트갤러리에 들어서는 이태호 교수를 리우식(65) 대표가 반갑게 맞았다.

이날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열리는 ‘미술사가들이 사랑한 질그릇과 무낙관 그림전’의 첫 주빈이 도착하니 전시장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달려 나온다. 인쇄업체인 경림코퍼레이션 대표인 리우식씨는 나이 쉰이 넘어 삼수 끝에 명지대 미술사학과에 입학해 박사과정까지 마친 만학도다. 세 스승의 연구실을 드나들며 소박하지만 뜻 깊은 소장품을 눈여겨보았던 리 대표는 전시장을 마련하자마자 이 소문난 컬렉션을 개관기념전으로 기획했다.

뒤이어 도착한 유홍준 교수는 “30년 전 50만 원에 산 질그릇이 지금은 30만 원에 팔리니 이러고도 우리 미술품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관람객에게 되물었다. 유 교수는 “미술사가와 수집가에게 무시당하지만 한국미술사의 바탕을 이루는 이들을 재평가하고 보완하려 외상을 지더라도 오기로 더 샀다”고 회고했다. 흔히 토기(土器)라 부르는 질그릇은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는 생활 민예품이지만 청자나 백자에 비해 헐값에 저평가 돼왔다는 것이다. 경매에 나오면 부장품 아니냐는 편견까지 받으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윤용이 교수는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1만 년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그릇에 흐르는 단순함과 고요함에 대한 요구가 질그릇의 전통 속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호 교수는 “작가의 서명이 없는 무낙관(無落款) 그림은 솜씨가 좋고 격이 높아도 홀대받아왔다”며 이 비어있는 회화사의 한 귀퉁이를 채워 넣기 위해 일부러 더 찾아다녔다고 털어놨다. 낙관 전통이 조선 중·후기부터 자리 잡은데다 직업화가가 아닌 문인화가는 취미로 그린 것이라 굳이 이름을 써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회화성이 빼어난 무낙관 그림의 발견은 흙에서 옥을 고르는 일만큼 즐겁다”면서 미술품 수집을 시작하는 초보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품목이라고 조언했다. 적은 돈으로 자신의 취향을 키워가며 안목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세 석좌교수는 “공부를 위해 한 점 두 점 샀지만 전시장 조명등 밑에 잘 모아놓으니 제법 근사해 보인다”며 이게 컬렉션의 묘미라고 입을 모았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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