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만 강요하는 "통제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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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선생님, 저는 공부할 때 눈으로만 읽어서 외거나 책에 밑줄을 그으면서 하는데 각자의 공부방식을 무시하고 연습장을 매일 3장씩 채워서 내라는 건 너무하시는 것 같아요』 『단체생활을 하는 학교에서 개인사정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효과를 보도록 되어 있어.』 지난달 2일 서울D여중 2학년교실. 이 학급 박양(14)은 학생들의 공부를 채찍질하기 위해 각자의 연습장에 공부한 흔적을 3장씩 남겨오도록 해 검사하는 담임교사에게 큰마음을 먹고 말문을 열었다 면박만 당하고 말았다.
박양의 학급학생 6∼7명은 결국 매일 종례시간 무렵의 쉬는 시간이면 옆 반으로 달려가 친구의 연습장을 빌어 눈속임으로 담임교사의 검사를 때워나가 일과를 계속 되풀이 해야했다.
이에 앞서 박양의 학급학생들은 무거운 가방의 부담을 덜기 위해 학교측에 사물함을 만들어 달라는 건의를 한 일이 있었다.
책가방이 무겁다는 것은 모든 학생이 느끼는 고충이었다.
그렇지만 사물함 설치를 내놓고 건의할 자신은 없어서 건의함을 이용하기로 했다. 물론 무기명으로 건의문을 냈다.
학생들은 이름을 밝혀 건의를 하면 어떤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는 게 상례였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그러나 이 건의가 박양 등 몇 명의 소행(?)임을 밝혀냈다. 박양 등은 교무실에 불려가 말을 들어야 했다.
『너희들은 왜 그리 불만이 많나. 학교도 해주고 싶지만 재정형편상 어려운거야』 박양의 토로. 『담임선생님께 어떤 요망사항을 말해도 교장, 교감선생님까지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요. 또 교장선생님 말 한마디에 선생님들이 꼼짝 못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고요.』 일부 학교나 교사의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교육자세가 빚어내는 폐해들.
×××
지난달6일 실업계인 서울H고교 2학년 자동차과 교실.
『브레이크를 밟을 때 「삐익」하는 소리가 나면 어디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에 대해 정비업소에서는 학교에서 가르쳐 준 것과 달리 브레이크 디스크의 마모때문이라고 하던데요.』한 학생의 질문.
『내가 가르친 것이 맞아. 너희들이 무얼 안다고. 책에 있는대로만 이해하면 된다.』 이어 정비과목 시간.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인 담당교사는 출석을 부르다 말고 대답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학생 2명을 불러내 뺨을 한대씩 때린다. 교실에 말없이 번지는 반발의 물결.
수학시간-.
『선생님. 수열의 응용부분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진도를 나가야되니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다. 혼자 더 생각해 보고 나서 나중에 교무실로 와서 질문해라냄 이학급 이군(17)의 불평. 『선생님들은 흔히 교무실로 와서 물어보라고 하시지만 교무실은 좋은 일이 있어도 가기가 꺼려질 정도로 왠지 두려운 곳이어서 발걸음이 내켜지지 않습니다.』 ×××
서울Y국교 5학년 최군의 경우.
최군은 달리기·웅변·노래 등으로 급우들에게 인기가 있고 쾌활한데다 앞강서기를 좋아해 2학년부터 지금까지 반장을 맡아왔다.
이러던 최군에게 지난4월말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집에 오면 『머리가 아프다』 『학교에 가기 싫다』며 식사도 거르는 등 투정을 부렸고 성적도 떨어졌다.
부모들은 몸이 아픈 것으로 생각하고 소아과 등 여러 병원을 데리고 다니며 진찰했으나 아무 이상이 없었다. 부모의 끈질긴 추궁 끝에 최군은 문제의 원인이 담임교사(여·41)와의 관계에 있음을 털어놨다.
담임은 앞장서서 개구장이 노릇을 하는 최군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 못마땅하게 보고 『반장이 왜 그 모양이냐』 『깡패같이 설친다』고 망신을 주고 벌을 가하는 등 최군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
물론 민주적인 자세로 「학생중심 수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도 많이 발견할 수는 있다.
서울강남여중 김모 교사(36·여) 는 『일제교육의 악습이 여지 껏 되풀이되고 있다는 생각에서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가지시도를 했었다』 며 『학생중심의 수업이나 학급운영이 처음에는 방만하듯 했지만 결국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했다.
숙대 함종규교수 교육학)는 『비록 일부교사라 할지라도 민주형이 아닌 통제형 교육을 하면 비민주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라며 『교사는 학생과의 일상적 접촉에서도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야하며 자율적교육으로의 전환을 위한 우리 교육풍토의 쇄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김 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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