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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의 도산 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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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노사분규를 겪으며 우리나라 경경성장의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어느 공양 하나 수출에 연관되지 않은 경우가 드물고, 모든 제품은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는 것을 볼수 있다.
만일 70년대 초입에 오늘과 같은 노사분쟁이 일어났다면 지금처럼 사태가 복잡하고 난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출상품의 구조를 보아도 공산품의 비중은 95%에 달한다. 그중에서 경공업제품은 4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중공업 제품이다.
이들 중공업제품도 고도화·다양화·고급화의 추세가 뚜렷하다. 전자제품, 자동차, 기계부문이 수출 신장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있는 것이다.
이런 제품일수록 부품은 수천, 수만 가지로 분류되고, 그 부품제조 하청업체도 그만한 삭에 이른다.
더구나 오늘과 같은「제로 인벤토리」경영기법 시대에는 부품을 창고에 재어 놓고 하나 둘씩 꺼내 쓰지 않는다.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원가절감면에서 훨씬 유리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면 휴업상태에 있는 자동차 경우만 해도 정작 자동차조림공장의 분규는 타결이 되었지만 자동차는 한대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부품을 대주는 하청업체들이 가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품은 모두 2만 여개에 달하며 그것을 납품하는 1차, 2차 계열의 중소업체들은 1천2백여개사나 된다. 이들 계열부품공장에 이상이 생기면 자동차 생산은 마비되고 만다.
이런 현상은 중공업제품 모두가 마찬가지다.
역의 경우도 있다. 원자재공장이 문을 닫으면 그것을 공급받는 수천 수만의 완제품 제조업체들은 연쇄적으로 조업중단을 해야한다. 엊그제 국내 아크릴사의 62%를 공급해온 한일합섬공장이 문을 닫자 전국 4건여개의 봉제공장이 긴장했다.
뒤늦게 노사타결이 되었으니 망정이지, 그대로 조업중단 사태가 계속되었으면 섬유업계는 꼼짝없이 손이 묶여야 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몰고올 제2, 제3의 충격이다. 대기업의 공양이 일손을 놓고 있으면 중소부품업계에 그 영향이 파급되고, 납품을 제때에 못하면 대금이 결제되지 않고 돈이 흐르지 않으면 그 기업은 필연적으로 빈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요즘의 노사분규는 멀지 않아 그런 사태를 몰고올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연쇄 도산은 곧 연쇄부도를 의미한다. 중소기업들에 연쇄 부도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것은 금융공황사태를 몰고 올 것이다.
물론 아직은 그런 극한국면에까지 이르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노사분규가 전국적으로, 전산업에 확산되면 탁상의 위기가 현실로 파급될 것이다.
정부는 자금지원을 강구하겠지만 가뜩이나 통화팽창으로 인플레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서 통화공급엔 한계가 있다.
우리의 경제가 금융공황의 상황에까지 가면 파국이나 마찬가지다. 경제규모가 커진만큼 노사는 운신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 뒤집어 말하면 노사의 책임이 옛날같지 않다는 것이다.
노사분규가 단순히 노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경제의 사활이 달린 문제인 것이다. 그 점에서도 노사가 분규를 서둘러 수습하는 노력과 성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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