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북문인작품 출간움직임|정지용·김기림 전집 햇빛볼듯|민음사등서 지형 준비…해금즉시 내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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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고흔 폐혈관이 찢어진채로/아아, 늬는 산참새처럼 날러갔구나!』 (정지용의 『유리창I』 중에서)
지난8일 정부·여당이 납·월북문인들의 작품에 대해 문인협회등으로 하여금 해제를 검토케하겠다고 피력, 매년 8·15를 맞을때마다 「반쪽문학콤플렉스」의 고통을 느껴왔던 문단의 비상한 주목을 끌고있는 가운데 몇몇 출판사들도 정지용·김기림등 해금가능성이 높은 납북문인들의 전집출간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납·월북문인선별해금논의는 70년대부터 거론돼왔으나 78년 정부의 규제완화방침, 83년 문인협회의 납북문인대책위원회발족, 여러차례에 걸친 유족들의 탄원등은 번번이 진전없이 좌절돼 왔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떠오른 선별해금문제는 최근의 민주화바람과 함께 6·29이후 남북한 모두에서 버림받은 「문학사의 별」들을 되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보편화된 시점에서 과거보다 현실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납·월북문인작품해금논의가 있을때마다 거론돼왔던 정지용·김기림·백석·박태원·이태준등 가운데 가장 해금가능성이 높은 문인은 정지용과 김기림이다.
이는 이들이 납북됐다는 것이 문단의 정설처럼 돼있고 아울러 이들이 해방이전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순수시로 문명을 날린 대표적인 시인들이었기 때문. 따라서 납·월북문인해금의 상징적 선두가 될 이들의 해금을 대비한 전집출간 움직임들은 문단및 학계의 중요 관심사가 아닐수 없다.
우선 정지용전집을 준비중인 출판사는 민음사. 이미 지난82년 정지용의 장남 구관씨 (현재 인천거주) 와 합의, 출간준비를 마쳤다가 무산시킨 경험을 갖고있는 민음사는 8일 해금논의소식을 듣고 당시의 지형을 보완중이며 해금즉시 전집을 출간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전2권으로 준비중인 정지용전집의 첫권은 『정지용시집』 (1935년) 『백록담』(1941년)등에 실렸던 시 1백50여편을 수록하게되며 둘째권은 그의 산문들로 묶여질 예정이다.
국내모더니즘운동을 개척한 시론가로도 널리 알려진 김기림의 전집은 그의 장남 세환씨 (현재 서울거주)에 의해 출간이 추진되고있으며 최근 문학과 지성사등의 출판사와 접촉을 갖고 있다.
정지용과 김기림전집자료들을 대부분 갖고 있는 서강대 김정동교수는 김기림전집이 『태양의 풍속』 『바다와 나비』 『기상도』등의 시집과 『시론』 『시의 이해』 등의 시론집, 기타 산문등을 합쳐 단행본 5∼6권분량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정지용·김기림전집출간준비소식을 접한 김동리문인협회이사장은 『당국이 문인협회측에 납·월북문인해금검토를 의뢰해오면 첫단계로 이들 두문인의 해금부터 요청할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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