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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믿을수있고 바른사상지닌 사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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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선거에 대비한 여야의 태세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선거를 의식한 예상 후보들의 움직임도 알게모르게 활발해지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려 있지만 이 시절 우리 상황에서 어떤 인물이 대통령이돼야 할지도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수없다. 「바람직한 대통령」에 관한 의견을 듣는다.【편집자주】
우리 국민 4천만명이 그동안 겪어온 고통의 대부분은 바른 지도자를 갖지 못했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회사의 장, 부대의 장, 관서 부서의 장, 기타 크고 작은 단체장들의 인품과 지도 역량이 그가 장으로 있는 기구와 단체를 죽이고 살리며 거기에 몸담고 있는 사람에게 복과 화를 모두 안겨줄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체험해 알고 있다. 하물며 나라의 장에 이르러서야 할말 있겠는가.
우리는 그동안 이 장을 선택하는 권한을 실질적으로 박탈당한채 살아오면서 숙명처럼 강요된 지도자의 지도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 손으로 우리의 지도자를 뽑을수 있는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다. 불만스런 지도자를 숙명으로 여기던 시대가 가고 선택의 책임이 국민들에게 돌아올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하나. 새로 뽑히는 대통령은 지도자로서의 일반적 속성과우리 민족의 시대적 과제를 풀어갈 특수속성을 갖추어야 한다. 지도자의 일반속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지도자로 뽑는 것은 민족적 자해행위다. 시대적 과제와 상반되는 대통령을 뽑는 것은 대한민국의 실질적 혁명을 뜻한다. 우리는 앞으로 후보로 나설분들을 철저히 파악하여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감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번에 국민들의 실수는 대한민국의 진노를 되돌릴수 없는 곳으로 돌려놓을 것이라 믿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지도자가 되려면 적어도 다음의 세가지 일반적 속성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로, 보통 수준 이상의 체계화된 지식의 보유자여야 하며 치우치지 않는 판단을 할수 있는 분별력을 갖추어야한다. 이끄는 자가 이끌리는 자보다 무지하다면 비극이다.
최근 한 외국기자가 평하기를 『한국사회엔 기이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경제계·학계·언론계등에는 세계적 수준의 인재들이 모여 있는데 정치가들의 지적 수준만은 놀랍도록 낮다. 이점에 대해 우선 놀랐다. 운운…』우리도 이 평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둘째로, 책임감이 누구보다 높아야 한다. 특히 자기의 말에 책임질줄 알아야한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 이전에 사회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사회란 사람과 사람간의 「약속의 그물」로 엮어져 있다.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를 질서있는 사회라 한다. 사회 전체를 이끌고 갈 대통령이 식언을 밥먹듯한다고 하면 그 사회는 불신의 아수라판이 되지 않을수 없다. 3선 출마 번복이가져온 유신때의 혼란, 개헌약속을 번복한 「4·13」에 대한 국민적 분노도 「약속위반」에 대한 국민적 추궁이었다.
『사정이 바뀌어 번의했다』든지, 『한마디 말로 사람을 묶으면 안된다』고 하는 무책임한 사람들을 지도자로 선택한다면 무질서의 혼란을 국민이 자초하는 셈이다.
세째로, 지도자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용기란 개인의 이해득실을 떠나 해야할 일을 하고 해서는 안될 일을 하지않는 결단력을 말하며 자기의 과오를 스스로 인정하고 시정하려는 마음가짐을 이른다.
「6· 29선언」이 민정당원이나 반대당원, 그리고 국민 일반에게 똑같이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던 이유는 이 선언이 지도자의 참 용기의 한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천서사건」과 「박종철군사건」에 대해 모두 분개했던 것은 정치 지도자가 책임회피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얄팍한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위와같은 지도자로서의 일반속성만을 다 갖추었다고 대통령 적격자라 할 수있을까? 아니다.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시대적 과제를 생각할 때 몇가지 속성을 더 갖추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는 선명한 자유민주주의 기수여야 한다. 그가 혁명지도자가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라면 자유민주주의에 투철한 사상적 지도자여야 한다. 새로 뽑히는 대통령의 가장 큰 역사적 사명은 나라 안팎의 적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일이다. 사상적 신념이 뚜렷하지 않으면 이 과제를 감당할수 없다.
둘째로, 민족화의 기수여야 한다. 우리 사회는 사상적으로, 지역적으로, 그리고 사회 계층에 있어서 많은 분열요소를 안고 있다. 이들을 모두 하나로 화합시켜야할 엄청난 과제가 새 대통령에게 부과될 것이다. 지역적 감정을 지지 기반으로 삼으려 한다거나 특정계층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후보는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
민족적 과제를 해치는 사람이 어떻게 지도자가 될 수있겠는가. 민족화합의 기수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각계층 모두의 뜻을 고루 대표할수 있는 진정한 민족주의자여야 한다. 개인의 이익, 자기당의 이익보다 나라의 이익, 국민 전체의 이익, 민족 전체의 이익을 앞세울줄 아는 속 넓은 민족적 차원의 지도자여야 한다.
셋째로,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는 국제환경 속에서 이 민족의 장래를 개척해 나갈 지도자는 누구보다 앞서는 국제감각을 가져야 한다. 국제사정에 맹목인 지도자가 이끄는대로 우리가 따라가다보면 막다른골목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욕심은 위에서 제시한 세가지 일반속성을 갖춘 「믿을수 있는 인격자(man of integrity)」로서 이 시대적 과제를 이끌 「바른 사상의 선각자」인 대통령을 갖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상적 대통령감이 현실에 존재하는가에 있다. 선거로 이상적 대통령을 만들어 낼수는 없다. 그러나 선거로 이상형에 좀더 가까운 후보를 선택할 수는 있다.
앞으로 몇달 사이에 우리는 몇몇의 대통령후보를 만나게될 것이다. 이 후보 중에서 누구를 선택하는가 하는 중요한 시험이 온 국민에게 닥쳐오고 있다. 이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시험이 우리 국민의 수준을 결정해줄 것이다. 감정을 누르고 이성을 밝혀 이 시험을 바로 칠수 있도록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자. 이 시험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이는 시험이다.
이상우 <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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