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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종업원 임금' 신고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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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개인사업자의 종업원 임금 신고제 도입을 놓고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왼쪽부터 안종범 교수, 김재진 연구위원, 강치원 교수, 박상근 교수, 백준성 이사. [사진=최승식 기자]

▶강치원(사회)=종업원에게 지급한 임금을 신고하는 제도의 도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실효성이 있다고 보는지 말씀해 달라.

▶김재진=자영업자에 대한 소득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봉급생활자를 포함한 성실납세자의 불만이 높다. 소득수준이 동일하면 세부담도 같아야 한다. 지금처럼 개인사업자 중 복식부기 대상자에게만 종업원 임금 신고 의무를 부과하면 나머지 75%에 대한 임금 지급 현황을 파악할 수 없다. 임금을 지급하는 사람과 임금을 받는 사람 양쪽에서 상호 검증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종업원 임금 지급을 신고하는 것은 세금 부담과 4대 사회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을 높일 수 있는 만큼 반드시 필요하다.

▶안종범=임금 신고는 자영업자의 소득파악과 EITC 도입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부는 근로자 중 소득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국가가 직접 지원을 하는 EITC를 추진하고 있지만 지원받을 일용직이나 임시직 근로자의 소득이 파악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자영업자 소득 파악 역시 계속 강조돼 왔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제도 자체는 옳은 방향이라고 평가한다.

▶박상근=납세자의 협조가 없으면 이 제도는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 종업원을 고용하는 개인사업자는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등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임금을 신고하면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개인사업자가 종업원 임금으로 월 150만원을 신고하면 사업자는 4대 보험료로 10만8000원을, 근로자는 갑근세와 보험료 등으로 11만8000원을 더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고를 하면 부담이 늘어나는데 임금을 신고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국세청이 개인사업자를 다 조사할 수도 없다.

▶백준성=개인사업자 입장에서 종업원 임금을 신고하면 4대 보험뿐 아니라 매출 자체가 올라가는 부담이 있다. 연간 매출이 4800만원 미만인 간이과세자가 월 150만원을 주고 종업원 1명을 고용하면 인건비만 연 1800만원이다. 여기에 원재료비와 임대료 등을 합하면 비용이 신고한 매출을 넘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임금을 신고하게 하면 매출도 올려 신고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또 매출액이 4800만원을 넘으면 일반과세자로 전환되는 부담이 있다.

▶사회=그렇다면 종업원에게 지급한 임금을 신고하는 제도와 자영업자 소득 파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박상근=학계에선 개인사업자가 매출의 50% 정도를 신고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매출이 1억원이면 5000만원만 신고한다는 것이다. 자영업자에 대한 간이과세 제도 등 각종 특례 조치가 너무 많다고 본다. 현재 연간 매출이 4800만원 이하인 사업자는 대략 매출액의 2~3%를 부가가치세로 내고 있다. 이를 폐지하면 사업자들이 비용을 인정받기 위해 종업원 임금을 신고할 유인이 생긴다. 임금 신고를 의무화하는 것보다 먼저 자영업자의 매출을 파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김재진=개인사업자가 돈 안 들이고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득이 드러나는 것이 싫은 상황에서 신고서류 작성이나 제출 과정이 어렵고 복잡하면 불만을 갖게 될 것이다. 또 탈세 가능성이 큰 현금거래는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한국은 현금거래 비중이 58%로 15% 수준인 미국보다 월등히 높다. 미국에선 은행 입출금뿐 아니라 일반 상거래에서도 현금을 많이 쓰면 신고 대상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구입하는 데 1만 달러를 현금으로 내면 즉시 보고된다. 금융거래정보를 정당한 과세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백준성=개인사업자가 장부기재를 하면 일정 액수를 세액공제하는 등 과감한 유인책이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는 장부기재를 하면 6만~8만 엔을 기장비용으로 인정해 세액공제를 해 준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하는 데 그동안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지난해 소득공제 비율을 낮춘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공제한도를 높여 더 활성화해야 한다.

▶안종범=개인사업자가 종업원에게 지급한 임금을 신고하면 4대 보험 등의 부담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간이과세 제도를 당장 철폐해 매출과 비용을 제대로 신고하도록 하면 부담은 더 클 것이라고 본다. 임금 신고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것이다. 신용카드 사용액의 소득공제 제도는 과표 양성화에 큰 공헌을 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는 더 줄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회=이번 조치는 EITC 도입과 4대 보험 확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김재진=이 제도가 시행되면 4대 보험의 사각지대가 축소된다. 자의든 타의든 사회안전망에 가입하지 못해 질병.노후.실업.산재사고 등 사회적 위험에 방치된 근로빈곤층이 줄어든다. 자영업자의 경우도 4대 보험료 부담이 늘어난다고만 생각해선 안 된다. 소득 파악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EITC 제도가 자영업자에게도 확대 적용되면 영세 자영업자도 그만큼 혜택을 본다.

▶백준성=종업원을 고용하는 개인사업자만 4대 보험을 꺼리는 것이 아니다. 근로자가 스스로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건강보험 등에 가입한 부녀자는 이를 꺼릴 것이다. 또 고용된 사람 중에는 불법체류자도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안종범=정부가 그동안 전 국민을 상대로 4대 보험을 실시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조치를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지금부터는 조세와 복지를 통합해 효율적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 4대 보험은 부과-징수-급여의 단계가 있는데 개별 공단이 따로 한다. 적어도 부과와 징수는 국세청이 맡고 실제 지급하는 부분은 각 공단에서 맡는 방식이 타당하다.

▶사회=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것이 자주 부각된다. 이들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백준성=의사.변호사 등 소위 사회지도층의 납세 의식을 일깨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고액 탈세자의 경우 일정기준에 따라 정보 공개를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세무 인력의 조정도 필요하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의 징수 비율이 7대 3이지만 세무 인력은 반대다. 국세공무원 1만7000여 명, 지방세 공무원 2만2000여 명이다. 지방세와 국세 공무원을 통합하면 지금보다 효율적인 세무 행정을 펼 수 있을 것이다.

▶김재진=의사 등 고소득자들을 일괄적으로 탈세자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의사의 경우도 건강보험의 급여 대상인 것은 소득파악이 잘된다. 단 성형수술 같은 비급여 부분은 파악이 어렵고, 특히 현금으로 받는 부분은 누락될 가능성이 크다.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의 경우도 환자나 고객 등을 통해 상호 검증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박상근=고소득 전문직의 금융거래를 파악해 과세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의 경우는 금융정보를 과세에 이용하는 범위가 체납이나 세무조사 등으로 너무 제한돼 있다. 고소득 전문직의 재산 증가와 소비 등을 역산해 소득을 파악하는 방법도 연구해야 한다.

김재진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박상근 명지전문대학 겸임교수(세무사)
백준성 한국세무사회 연구이사(세무사)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강치원 강원대 사학과 교수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사회)

정리=김원배 기자 <oneby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정부안 따르면 인건비 8% 증가”
납세자연맹 반대 서명 운동

재정경제부는 9일 종업원을 1인 이상 고용한 모든 자영업자는 종업원에게 준 임금 내용을 관할 세무서에 보고해야 하며, 이를 어겨 허위로 보고하면 가산세를 2% 물린다는 내용의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해까지는 숙박업소나 음식점의 경우 연매출이 1억5000만원 미만이면 종업원에게 준 봉급 내용을 신고하지 않아도 가산세를 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영세한 음식점 등은 종업원에게 지급한 봉급 내용을 신고하지 않아도 됐다.

올해부터 모든 자영업자가 의무적으로 종업원에게 준 봉급 내용을 신고하도록 한 이유는 저소득 임금근로자의 소득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이르면 2007년 일은 하지만 소득이 낮은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근로소득보전세제(EITC)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저소득 임금근로자의 정확한 소득 파악이 필요하며, 가장 좋은 방법이 지급조서(봉급받는 사람의 인적사항.금액.지급시기 등을 기록한 자료)를 제출받는 것이란 게 재경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영세 자영업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종업원의 임금을 신고할 경우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등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정부의 개정안에 대한 반대 서명 운동도 시작했다. 연맹은 정부안대로 되면 개인사업자의 인건비 부담이 8%가량 늘고, 자영업자에게 고용된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도 7% 정도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