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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전용 지도 만든 ‘우특지’ 삼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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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왼쪽부터 차재중, 모준환, 김덕렬.

왼쪽부터 차재중, 모준환, 김덕렬.

지난 3일 울산 중구 성안동에 특별한 마을 지도가 탄생했다.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길이 어디인지, 상가에 경사로와 장애인 전용주차장이 있는지 등을 표시한 장애인용 지도다.

뇌병변 장애 차재중·모준환·김덕렬씨
휠체어 타고 다니며 일일이 체크
“장애인과 함께하는 사회 됐으면”

이 지도를 만든 뇌병변 장애인 차재중(65)·모준환(72)·김덕렬(70)씨는 이를 ‘우특지(우리동네 특별한 지도)’라고 소개했다. 지도의 길에는 색깔이 있다. 녹색은 휠체어를 타고 혼자 갈 수 있는 길, 파란색은 휠체어를 타고 보호자 도움을 받아 갈 수 있는 길, 빨간색은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없는 길을 나타낸다. 미용실·은행·마트·병원·식당 연락처와 입구 경사로 유무, 화장실 편의성 등의 정보도 담겨있다.

이 지도는 2000부 만들어져 지역 공공기관에 비치될 계획이다. 울산시 장애인종합복지관 지역연계팀이 장애인용 지도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오세형 팀장은 11일 “지난해 초 밥 먹으러 갈 때 메뉴가 아니라 접근 가능한지를 먼저 고민하는 장애인을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지도 제작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발품이 필요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병변 5급 장애인 차씨가 가장 먼저 지원했고, 걸을 순 있지만 행동이 느려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온 모씨와 김씨도 합류했다.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매주 수요일에 함께 성안동 길을 다녔다.

김씨는 “한 주도 빼먹지 않고 매주 30~40㎞를 걸었다”고 했다. 복지사와 주민들이 탐방 때마다 함께했고 한국폴리텍대학 봉사단도 동행하며 지도 디자인을 맡았다.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복지관 입구에서부터 막혔다. 장애인들이 주로 드나드는 주차장 쪽이 아닌 정문 입구에 턱이 있었던 것. 복지관은 턱을 없애고 경사로를 설치했다. 경사가 심해 가지 못하는 곳도 많았다. 잡상인으로 오해받아 상점 앞에서 문전박대 당하기도 했다.

이 지도에서 녹색으로 표시된 길은 전체의 10%가 되지 않는다. 기자가 직접 휠체어를 타고 나가보니 녹색길도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하고 하수구 뚜껑 같은 장애물이 있어 다니기 쉽지 않았다.

한 공원 장애인화장실은 규격이 맞지 않아 휠체어가 들어가지도 않았다. 차씨는 “인도 턱과 공원시설만 개선해도 외출이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올해도 ‘우특지 프로젝트’에 참여해 지난해 가보지 못한 좁은 골목길을 모두 다닐 것”이라며 “우특지가 울산 전 지역, 전국에 전파돼 장애인과 함께하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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