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말,야의 반응-민주화의 싹,가꾸어야 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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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 군수뇌의 발언이 정가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이제 겨우 싹이 보이기 시작한민주화 장정에 뜻밖의변수는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문제는 박희도육군참모총장이『김대중씨가 대통령에 출마하면 불행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지난 19일자 뉴욕타임즈지의 보도에서 발단되었다.이 신문은또「일부 군장교들」(some army officers)이 확고한 증거없이 김씨를 공산주의자 내지 공산주의 동조자로 보고있다는 외교관 및 정치분석가의 말을 인용 보도했고 일부군장성간에는 김씨가 대통령이 될 경우보복의 우려가 있다는 대목도 들어있다.이에대해 민주당은『군은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철저히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국토방위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요지의 성명을 28일 발표했다.이어 민추협도 29일자 성명에서 박장군 발언에 대해『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이같은 성명이나오기까지 야권안에는 상당한 논란이 있었고 고심도 컸던 것 같다.민주국가에서 군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군이 정치적으로 엄정중립을 지켜야하고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다해야함은 너무도 당연한 요청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5·16이후 군의 일부가 정치에 깊숙이 간여해온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군의 정치에 대한 영향력이 컸던 만큼 여기에 비례해서 국민의 문민정치에 대한 요구가 확산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국민의 민주화 열망에 군의 정치적중립요구가 핵심부분의 하나였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이처럼 시기적으로 미묘한 때에 박총장발언이 나왔다는 것은 적잖이 당혹스러운 일이다.물론 군인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정치문제에 대한 사사로운 의견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그러나 군이 어떤 특정인을 놓고 대통령후보로 기피한다는 인상을 준것은 군의 공신력을 위해서 적어도 신중한 발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우리는 6월사태때 사태수습을 위한 방법의 하나로 군을 동원할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군이 스스로 이를 반대,국군에 대한 신망을 높인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다.더우기 군의 기간조직은 어떠한 경우에도 초연한 입장에서 국토방위란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명예로운 전통을 지켜오지 않았던가.이번 박장군의 발언은 성질상「사소한 문제」로 보아 넘기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을 수는 있다.그러나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민주화에있다는 사실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된다.대국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일부 시비거리를 대범하게 넘기는 것이 전환기의 슬기라는 생각도 든다.뿐더러 사석에서「오프 더 레코드」(공표하지 않기로한 발언)로한말을 갖고 마치 그것이 특정 정치인에 대한 군전체의 입장이나 견해 표명인 것처럼 확대해석,견강부회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미묘한 현실로 미루어 현명한 대응은 아니라고 본다.이제 대세는 이미 모든 정치문제를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한다는 쪽으로 굳어져 있다.따라서 시비곡직은 큰 테두리에서 국민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예민하고 미묘한 때에 세력집단간에 서로를 자극하는 신중치 못한 언동은 어느 쪽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지금은 어떤 입장에 있는 사람이건 민주화란 소중한 싹을가꾸기 위해 언행을 아끼고 자제할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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