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선진국은 어떻게 막나|본사특파원 현지 긴급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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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천재지변이 없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일단 재난이 일어난 다음에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능력에 있어서 제3세계와 제1세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생긴다. 제3세계의 재난대책이 대개 임기응변격인데 비해 미·일·서구의 예에서 보듯 제1세계에서는 모든 방재·구호 조직이 제도화되어 있고 평상시에 예행연습과 조직점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재해가 발생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전국지역공동체 단위 방재기능이 활동을 시작하게 되어 있다. 장비의 우수성보다 이와 같은 사전준비가 재해의 피해를 막는 요체라는 것이 본사 현지특파원들의 결론이다.

<미국>
지방자치제가 확립된 미국에서는 긴급재해의 예방·구조·복구활동이 확립되어 있으며 1차적으로 군정부가 나선다. 군정부마다 일반 수방·폭우배수·오수처리·수질오염·위생배수·적설비상, 심지어 노변하수구 나뭇잎 제거계등 물처리 관련계만도 7,8개로 세분돼 재해에 대비한다.
수재가 발생할 경우 그 처리도 1차적으로는 군이 나선다. 주정부는 재해처리를 위한 예산이 별로 없다. 군에 배정돼 있기 때문이다. 주정부는 피해를 본 군을 돕도록 인근 군의 지원을 조정하거나 피해상황을 파악, 연방정부의 지원요청여부를 결정한다.
지난 85년 버지니아주에서 홍수가 발생, 21명이 사망·실종하고 수백만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던 당시 주정부는 피해지역에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인근 주민들이 숙소를 이재민에게 제공토록 알선하는 한편 연방정부에 피해복구 지원을 요청했다. 재해의 정도가 심하고 광범위할 경우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언한다.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긴급사대를 경고하고 안전대피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강제퇴거 시킬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이 조치를 취함으로써 주정부는 연방정부에 예산 및 인원의 지원을 요청할수 있는 법적효과가 생긴다.
연방정부 레벨에서 재해를 총괄하는 곳은 연방재해 관리청이다. 여기서는 홍수·지진등 자연재해뿐 아니라 핵전쟁발발의 경우 대피등도 관장한다. 비상훈련·인력동원·긴급복구등이 주임무로 돼있다. 연방관리청은 5년마다 현지조사를 실시하는등 홍수다발지역을 집중관리하기도 한다. 주정부의 긴급사태선언과 주지사 요청이 들어오면 국방성과 협조, 공병단을 투입한다.
그러나 특징적인 것은 연방정부가 재해복구에 개입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공공시설 복구를 위한 것이다.

<일본>
폭우나 태풍·지진·폭설의 상습지대에 놓여있는 일본의 구호대책은 매우 짜임새가 있다.
수도권 행정기관이 가뭄으로 절수작전을 벌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홍수에 대비한 모의대책훈련을 실시할 정도다.
큰 재해가 발생할때는 29개 정부기관으로 구성된 비상재해대책본부가 설치된다. 국철과 도로공단등 31개 공공기관도 이에 참여하여 재해대책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각지방의 작은 마을에 이르기까지도 촌장을 중심으로 한 방재회의가 운영된다.
방위청은 평상시에도 자위대의 재해지역 구호훈련을 실시하며 긴급파견때에는 경찰 및 소방청등과 직접 통화연락이 가능한 방재상호연락용 무선기를 운용하고 있다. 각 행정말단기관도 평소 지역주민들과 공동으로 구조·피난·경비훈련을 쌓고 있으며 비상식량·의약·의류품등을 비축하고 있다.
일본의 이같은 재해대책수립은 1959년 중부지방을 강타한 태풍으로 5천97명이 사망·실종한 엄청난 사건이 던져준 교훈이기도 하다.
70년대 초반까지는 일본에서 갖가지 재해로 매년1천여명이 사망했으며 72년에는 그 피해액이 무려 GNP의 1%에 해당하는1조5천억엔에 이르기까지 했다. 국토의 10%가 하천범람 구역이며 전인구의 49%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재해방지에 대한 의식이 매우 높다.
재해지역에서는 화물무임수송(국철), 소포·우편무료취급(우정성), 전화요금면제(전화회사) 등이 실시되며 천재융자법이 발동되어 농어민들에게 비상자금을 긴급 방출한다.
더 주목할 것은 일본정부가 치산·치수 및 급경사 붕괴대책·하수도 정비등에 관한 수많은 5개년 계획을 착실히 실시하고 있으며 이 같은 국토보전사업에 연2조3천억엔(약13조 8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다는데 있다.

<서구>
치산·치수가 완벽할이만큼 잘 되어있는 서구 각국에서는 천재지변에 의한 인명피해 사고가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대형화재나 폭발·붕괴·교통사고등을 자연재해와 함께 처리하는 전문기구가 각국마다 별도로 갖추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스위스의 경우는 세계에서 가장 잘 조직된 민방위본부가 있어 어떠한 형태이든 국가위기가 닥치면 48시간 이내에 최고 62만명을 동원할수 있는 기동력을 발휘한다.
20세부터 50세까지의 남자는 예외 없이 민방위조직에 포함되며 이들은 매년 수주일내지 수개월간씩 전쟁을 포함한 각종 재난에 대비한 훈련을 받고 일단 유사시에는 인근 지역에서부터 총동원령이 내려져 인명구조나 현장복구에 나서게 된다. 재해의 경우는 소요경비를 전액 국가예산으로 충당한다.
서독의 경우는 각 지역공동체에 조직된 민간소방대를 주축으로 한 군복무 대신 선택하는 시빌 딘스트(민간봉사) 요원들이 1차적으로 활용되고는 있으나 재해의 성격에 따라 경찰·군대·전문행정기구의 특수조직이 가동된다. 가톨릭이나 적십자사등 구호관련 단체에서는 연중 기부금으로 모금하거나 각 가정에서 나오는 신문·잡지등의 폐품을 수거, 기금으로 활용한다.
프랑스도 각종 구호단체의 모금은 재해유무와 관계없이 연중 계속되며 단지 천재지변의 일선업무를 관장하는 것이 소방대라는 점에서 외국과 다르다.
「사페르·퐁피에」라고 불리는 소방대는 치안유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나 화재진압은 물론 교통사고처리, 인명구조, 수해나 전기· 가스· 독극물오염까지도 거의 도맡아 처리하는 다채로운 활동을 한다.
이탈리아의 산사태와 같은 대규모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EC(구공체) 회원국들간에 상호긴급구호반을 편성, 파견하거나 농민들이 큰 피해를 보았을 경우 해당국에 대한 EC분담금감축혜택을 주는등 협조체제가 비교적 잘 되어있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에 대한 부담은 다른 대륙국가들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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