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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틀에 가둬라…문·안 vs 반의 ‘프레임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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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을 이틀 앞두고 ‘대선 프레임 전쟁’이 시작됐다. 선거에서 프레임이란 상대 후보를 자신에게 유리한 틀 속에 가둔다는 의미다. 먼저 ‘정권교체’ 프레임이 부상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를 방문해 “반 전 총장이 되면 정권교체는 아니지 않으냐 ” 라고 주장하면서다. 문 전 대표의 이 발언은 반 전 총장을 ‘정권연장 후보’로 규정하는 프레임에 가두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9일 천안에서 열린 충남도당 개편대회에서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자격이 있는 정당은 국민의당과 민주당뿐”이라며 “결국 대선은 안철수냐 문재인이냐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반 전 총장 캠프의 핵심 관계자는 “반 전 총장이 집권하면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라며 “외교와 안보 분야는 확실히 나아질 뿐 아니라 경제·사회·민생 문제도 개혁해 사회를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반 전 총장 측의 박진 전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반 전 총장이 언제 한 번이라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나 새누리당에 발을 담근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반 전 총장도 박 대통령 탄핵 이후인 지난해 12월 16일 미국 뉴욕 외교협회(CFR) 초청 간담회에서 “국민은 국가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배신당했다고 믿고 있고, 그 때문에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다”며 현 정부와 선을 그었다.

문재인 “반기문 되면 박 정권 연장”
안철수 “결국 대선은 안·문 중 선택”
반 측 “우리가 이겨야 진짜 정권교체”
자신에게 유리한 틀 규정에 나서
문·안 ‘국가 대개조’ 반은 ‘대통합’
위기 극복 방법론 놓고도 갈려

‘대통합이냐 대개조냐’를 둘러싼 프레임 싸움도 치열하다.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는 각각 ‘국가대개조’와 ‘국가대개혁’을 내세우는 반면 반 전 총장은 ‘대통합’으로 맞서고 있다. 문 전 대표는 2017년 새해의 사자성어로 ‘재조산하(再造山河·나라를 다시 만들다)’를 꼽았다. 안 전 대표도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대한민국의 총체적 개혁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은 공공 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지난해 12월 뉴욕에서 정진석 새누리당 의원과 만나 “한국 사회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치적 대통합과 사회·경제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귀국 당일인 12일 인천공항에선 ‘갈등과 분열의 타협 중재자’ 역할을 강조할 것이라고 한다. 다음 날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참배 후 충청·영호남 을 찾아 통합과 대타협 메시지도 발표한다. 진도 팽목항, 5·18 민주묘지, 부산 유엔묘지, 김해 봉하마을 방문도 포함돼 있다. 반 전 총장의 이 같은 ‘대통합론’은 문 전 대표 등이 주장하는 ‘정권교체’ 프레임에 맞서면서 향후 연대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12월 충청권 의원들과 만나 “87년 체제를 끝내는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필요하다면 임기 단축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문 전 대표나 안 전 대표는 “개헌을 대선용 정략으로 활용하려 한다” 며 반 전 총장의 연대·통합론에 제동을 걸겠다는 분위기다. 두 사람은 “이번 대선에선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어 국민에게 평가를 받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를 붙여보자”는 방안을 제시해 반 전 총장의 개헌론과 큰 차이가 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센터장은 “본인의 강점과 상대 후보의 약점을 동시에 부각하는 프레임 경쟁은 사실상 선거 캠페인의 전부나 다름없다”며 “특히 이번 대선은 선거기간이 짧아 정책·도덕성 검증보다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한 후보가 선택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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