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에 20년 만의 '복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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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실시된 칠레 대선 2차 투표에서 53%를 득표해 승리한 미첼 바첼렛 후보가 산티아고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잉크가 묻은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산티아고 로이터=뉴시스]

"10년 전이었다면 과연 여자가 대통령이 된다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요?"

15일 실시된 칠레 대선 결선 투표에서 당선이 확정된 미첼 바첼렛(54)는 승리 축하 연설에서 감격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외신들도 "남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칠레 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고 평가했다. 바첼렛의 당선은 그만큼 예외적이다. 칠레는 가톨릭 인구가 거의 90%에 달하는 보수적인 국가다. 그런데 바첼렛는 가톨릭이 금기시하는 이혼을 했다. 세 자녀 중 하나는 미혼모 상태로 낳았다. 지금도 배우자 없이 열두 살의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일종의 무신론이라 할 수 있는 불가지론자다. 그럼에도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랐다. 남미에는 과거 아르헨티나의 이사벨 페론 등 여성 대통령이 몇 명 있었다. 그러나 대개 사망한 남편의 직무를 대행하거나 후광을 업고 당선된 경우여서 바첼렛의 당선은 더욱 빛난다.

◆ 민주 투사였던 그녀=바첼렛의 집안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로 인해 풍비박산이 났다. 피노체트는 1973년 집권, 20년 가까이 칠레를 철권통치했다. 공군 장성이던 그의 아버지는 독재 정권에 반대하다 체포돼 고문을 받던 중 숨졌다. 당시 22세의 의대생이자 사회주의 단체의 비밀조직원으로 활동하던 바셸레도 어머니와 함께 감옥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닷새간 쫄쫄 굶기도 했고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풀려난 후에도 호주와 동독을 떠돌며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하는 걸 꺼린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피노체트 독재의 악몽을 잊지 못하는 다수의 칠레 유권자에게 바첼렛의 쓰라린 인생 역정은 동정과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득표로 이어졌다.

그는 피노체트가 실각한 후인 90년 칠레로 돌아온 뒤 소아과 전문의로 일하면서 대학에서 군사학을 공부했다. 해박한 군사 지식으로 학교에서 스타였다고 BBC 방송은 전했다.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은 그를 2000년 보건장관으로 발탁했고, 2002년에는 칠레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으로 기용했다.

◆ 중도 좌파 정책 이어갈 듯=그는 선거운동 기간 중 총 36가지의 공약을 내걸며 3월 취임 후 100일 내 실행에 착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남녀 평등, 연금제도 개혁, 빈곤층에 대한 입학 전 교육비 보조 등이 포함돼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빈부 격차를 줄이는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온 그는 전반적으로 라고스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중도 좌파 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에보 모랄레스(46)가 볼리비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더욱 세게 불기 시작한 남미의 좌파 바람에 바첼렛도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기선민 기자

*** 바로잡습니다

1월 17일자 2면에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뽑힌 Michelle Bachelet의 한글 표기를 '미셸 바셸레'로 했으나 '미첼 바첼렛'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주한 칠레 대사관에 문의한 결과 후자가 현지 발음에 더 가깝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 바로잡습니다

1월 17일자 2면 '칠레 첫 여성 대통령, 피노체트에게 20년 만의 복수' 기사에 두 군데 틀린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선 "그는 피노체트가 실각한 후인 80년…"이란 부분이 잘못됐습니다. 피노체트가 공식 퇴진한 해는 90년입니다. 또 "남미에는 과거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 등 여성 대통령이 몇 명 있었다"는 부분도 틀렸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대통령을 한 여성은 후안 페론의 세 번째 부인인 이사벨 페론(1974~76년)이었습니다. 좋은 지적을 해 주신 독자 박형은씨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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