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전당대회 줄잇는 영남 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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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열린우리당 유재건 의장(가운데)과 원혜영 원내대표 대행(왼쪽)이 16일 오전 영등포 당사를 예방한 한나라당 이재오 신임 원내대표와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조용철 기자

열린우리당 김부겸(경기 군포) 의원이 당의장 출마를 16일 선언했다. '국민 통합'이 그의 기치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김 의원은 "한나라당 아성인 대구와 경북의 지역주의를 타파해 국민통합을 완수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대구.경북도 변하고 있다. 거기서 한나라당이 무너지면 한나라당은 존재의 기반이 없어지고, 열린우리당 정권 재창출의 길은 활짝 열린다"고 했다.

지금까지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영남 출신 후보는 김부겸 의원을 포함해 4명. 합천 출생에 경남도지사를 지낸 김혁규 의원과 남해군수.행정자치부 장관 출신의 김두관 대통령정무특보,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영춘(서울 광진갑) 의원이 그들이다. 여기에 부산시당위원장인 윤원호(여.비례대표) 의원도 조만간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10명 안팎의 전당대회 후보 중 절반이 영남권 후보인 셈이다.

유독 영남권 후보가 난립하는 이유는 뭘까. 여권 핵심부 일각에선 오래전부터 차기 대선 필승 계산법이 있다. 열린우리당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반드시 영남 후보를 내야 한다는 인식이다. 2007년 대선도 2002년 대선처럼 동서대립의 지역구도로 치러질 것이고, 열린우리당이 영남권 후보를 내면 한나라당의 영남권 표를 잠식해 이기게 된다는 것.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지난 대선 때 많은 사람의 회의 속에 노무현 후보를 적극 지원했던 논리도 '영남 후보 필승론'이었다. 당 관계자들은 "영남권 후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영남 후보 필승론에 자극받아 전당대회에 뛰어든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대의원은 권역별로 보면 영남권이 23%로 서울(19%), 경기(18%), 호남(18%)보다 많다.

이에 따라 당의장 자리를 놓고 다투는 정동영 전 장관과 김근태 의원 측의 영남 공략 계산법도 복잡해졌다. 1인2표제 투표에서 영남권 대의원들이 한 표는 영남 후보에 던진다 하더라도 다른 한 표를 누구에게 던지느냐를 놓고 양측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당의장 메이커'를 자처하는 당내 세력들도 영남 후보에게 '빅딜'을 제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내 친노 직계인 '의정연'은 김혁규 의원 지지 선언을 했다. 의정연은 대신 김 의원의 영남표를 자신들이 미는 또 다른 후보(정동영 전 장관이나 김근태 의원)에게 몰아주도록 김 의원에게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의정연은 영남권 후보를 활용해 당의장 메이커로서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참정연'도 마찬가지다. 참정연은 김두관 정무특보를 밀고 있다. 그러면서 김 특보에게 그 대가로 김근태 의원을 지지하도록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김영춘 의원과 윤원호 의원은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영남표를 내세워 정동영 전 장관 혹은 김근태 의원과의 연대를 꾀할 수 있다.

김부겸 의원은 대구.경북(TK) 대의원들의 1인2표 중 한 표를 쉽게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다른 한 표의 향방이다. 여기엔 현 정권 내 TK 지역의 좌장인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의 입김이 중요하다. 이강철 전 수석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TK 지역 표를 놓고 철저히 중립을 지킬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가진 TK 지역 조직력을 감안할 때 정동영 전 장관이나 김근태 의원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과정에서 영남 표가 사분오열되면 당내 영남권 입지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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