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문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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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호 4 면

새해가 됐는데도 별로 새로운 게 없습니다. 희망을 말하는 사람도 찾기 힘듭니다. 사방이 시계 제로에 울화통 터지는 일만 계속됩니다. 이제 곧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를 두고 온 나라가 한바탕 난리를 치르겠죠.


주변이 어수선할 때, 아니 어수선할수록,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책에서 길을 찾습니다. 새해 들어온 신간 중에 『작업 인문학』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는 만큼 꼬신다’라는 부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별로 가진 게 없는 이의 최종 병기는 ‘구라’”라는 김갑수 선생의 음악과 커피와 연애에 대한 ‘썰’은 절로 책장이 넘어가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더없이 어렵다고 느낄 주제를 맥락과 요점을 콕 집어 설명해내는 재주야말로 ‘고수’의 조건입니다.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평탄하게 살아서는 작품이 안 되는 것 같다. 인생을 지불하고 작품을 얻는 거다. 우리 신상에 별일 없으면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작품 대신 평온을 산 것이니.”(71p)


그러면서 “예술가들은 대속(代贖)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남의 죄를 자기 몸으로 견디는 일 말입니다.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통받은 인사들의 삶이 떠오릅니다.


확실히, 엄청난 고통은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이 ‘시대의 질곡’은 과연 어떤 작품을, 어떤 문화를 만들어낼 것인지. 대속의 심정으로 지켜볼 일입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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