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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녀상 강수…대사 불러들이고 통화스와프 중단하고

중앙일보

입력

한·일 관계가 급랭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6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총영사의 일시 귀국을 결정했다. 통상 외교적으로 유감스러운 사안이 발생할 경우 주재국 정부가 대사 등 해당국 외교사절 책임자를 불러 항의하는 초치(招致)를 하곤 한다. 그런데 초치 단계를 건너뛰고 곧 바로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한 것은 예상 밖의 강경 조치란 게 외교부 반응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적으로 굉장히 충격적인 조치로, 우리도 이 정도 수준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8년 일본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령하고 있다며 역사를 왜곡하는 주장을 펼치자 정부는 권철현 당시 주일 대사를 일시 귀국 조치한 바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각료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에 소녀상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도록 강하게 요구했지만 현 시점에서 사태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어 "재작년 한·일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녀상이 설치된 것은 한·일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준다"며 "외교 관계에 관한 빈협약에 규정한 영사 기관의 위엄을 침해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소녀상을 조기에 철거하도록 계속 한국 정부 및 관계 자치단체에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부산 소녀상과 관련해 "한·일 정부간 합의를 역행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언급하며 "한·일 정부가 책임을 갖고 시행해 나가는 것이 계속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이 이날 새벽 워싱턴에서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외무성 사무차관과의 회담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지지하며 착실하게 이행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이와 함께 긴급할 때 한·일이 상대국 통화를 융통하기 위해 진행 중이던 통화스와프 협의를 중단하기로 했다.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은 지난해 8월 이후 4개월만에 공식 중단됐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신뢰 관계를 확실히 만든 뒤에 (협의 재개를) 하지 않으면 (통화스와프 협정은) 안정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며 "통화스와프 협상은 한국 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정치·외교적 원인으로 한·일 통화스와프 논의가 중단된 것에 대해 유감이다”라며 “정치·외교적 사안과 무관하게 한·일 경제·금융협력은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일은 고위급 경제협의 연기도 결정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나가미네 대사를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불러 일본의 조치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했다. 윤 장관은 “양국이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길 바란다”는 입장을 전했다. 나가미네 대사와 모리모토 부산총영사는 다음주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하남현·유지혜 기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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