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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분출과 민주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민주화 열기속에 각계 각층에서 분출되는 욕구와 주장, 농성과 항의사태는 이제 근심과 불안을 자아내게 할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누적되어온 욕구불만과 맺힌 한이 오죽했겠는가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러나 요구와 주장들은 「완전」 「무조건」 「즉각」에 「전면」해제나,, 전면 회복등으로 숨돌릴 여지를 조금도 안주고 있다.
물론 과거의 잘못은 시정되어야하고 곧바로 할수 있는 것은 지체없이 해결해주는 것이 옳다. 가령 구속자 가족이나 해고당한 교사나 근로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그동안 겪은 울분과 고통은 상상을 절하며 한시가 급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오늘의 상황이 완전민주화가 된것도 아니고 단지 민주화의 문턱에 겨우 다다른 단계에 불과하지 않은가.
욕구불만이 아무리 쌓이고 쌓였다 하더라도 일의 대소와 완급은 있게 마련이다. 법적 절차도 무시할수 없다. 사태의 흐름과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풀어 나가야할 문제도 있다.
오늘의 상황은 혁명으로 정부를 전복시킨 4·19때와는 다르다. 당장 수용하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증오와 대결로만 치닫고 매도하고 물리적 집단행동에 의존한다면 도리어 사태를 그르칠 위험도 없지 않다.
지금의 민주화 호기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다같이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다. 무분별한 과잉욕구나 자극적 행동과 발언으로해서 만의 하나라도 판을 그르치게 한다면 이보다 더 큰 과오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각계 각층의 목소리나 욕구불만은 몇가지 원칙아래 표출되고 자제되어야 하리라고 믿는다.
첫째는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동안 고통 받고 희생된 숱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국민이 지향해온 궁극의 목표가 이 나라의 민주화인데 각계의 요구와 이의관철도 민주질서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요구의 내용도 정당하고 합리적이고 타당해야하고 순서와 절차와 과정도 민주주의 원칙이 존중되어야만 한다. 합리와 합법을 벗어나 초법적인 조치들을 일거에 얻어내기 위해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요구의 정당성까지도 희석되기 쉽다.
둘째는 자제와 인내하는 미덕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만사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적대심으로 대응한다면 민주화의 자해행위이고 흑백논리의 답습이며 혼란의 악순환을 면치못하게 된다. 지금은 할 말은 많아도 말을 아끼고 목소리를 낮추고 다같이 자제하고 자중할때다.
민주화를 위해 어느 누구보다 투쟁하고 앞장섰다고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공을 뒤에 숨기고 조용히 지켜보는 성숙과 금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안정과 질서는 정부가 입버릇처럼 외쳐오던 구호였다. 지금은 국민이 나서서 외칠 차례다.
이 기회에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는 쪽의 성의도 촉구하지 않을수 없다. 당장할수 있는 일도 미적미적하면 오히려 없던 문제까지 중첩되기 쉽다. 미리 문제를 풀어 더 큰 시비를 막는 지혜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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