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지시에 '앵무새'처럼 연설한 박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박근혜 대통령은 정말 '최순실 아바타'였던 걸까?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 연설에서 최순실씨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지시한 대로 연설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4일 TV조선이 보도한 최씨와 정 전 비서관의 통화 내용 녹취록에는 최씨가 정 전 비서관에게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정황이 나와 있다.

최씨는 2013년 6월말 박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국빈 방문하기 직전 정 전 비서관과 전화로 연설문에 관해 '지시'한다.

녹취록을 보면 최씨는 "연설 맨 마지막에 중국어로 하나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전 비서관이 "갑자기 맨 마지막에 중국말로 하면 좀…"이라고 하자 말을 끊고 "중국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문화와 저기, 인문 교류를 통해서…여러분의 미래가 밝아지길 기원한다"고 연설할 내용을 일러준다.

최씨의 지시는 그대로 박 대통령의 연설이 됐다.

박 대통령은 그 해 6월 29일 칭화대(淸華大) 연설에서 중국어로 "마지막으로 중국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문화와 인문 교류를 통해서 여러분의 미래가 밝아지길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 연설을 하루 앞둔 2013년 11월 17일에는 "외국인 투자촉진법이 통과되면 일자리와 경제적 이득이 얼마인지 뽑아보라"고 정 전 비서관에게 지시한다.

다음날 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외국인 투자촉진법이 통과되면 약 2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와 1만4000여 명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했다.

공개된 녹취록은 일부에 불과하고 최씨가 연설문 외에도 국정에 개입한 구체적인 사례는 수없이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검팀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이 나라 대통령 수준이 이 정도였나 하는 자괴감이 내부 기류"라며 내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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