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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시선의 선택, 소리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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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역시 이 겨울이 안겨준 또 하나의 기억은 지하철 종로3가역 입구에 앉아서 회심곡을 부르던 5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입구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은 채 '애고 답답 설운지고 이를 어찌 하잔말고…'하며 이어갔다. 겹겹이 입은 때묻은 한복과 털모자 사이로 수심이 가득한 눈매가 보인다. 그녀가 목을 쉴 때는 앞에 놓인 카세트 라디오가 다시 소리를 이어간다. 그녀의 청중은 종로3가역을 수시로 오르내리는 이 시대의 노인네들이다. 두 손으로 지팡이를 모아 쥐고 앉아 그녀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일어설 즈음에 동전 몇 개를 던져 넣으면서 감기 드니 저 안쪽으로 들어가 노래하라고 채근한다. 어디서 왔느냐며 참견도 한다. 지하철에서 내린 노인 관광단 몇 명이 1000원짜리 지폐를 그녀의 호주머니에 쑤셔넣어 준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녀는 '너희놈들 죄 아느냐 풍도 지옥에 가두리라' 하는 대목을 이어가다가 또 중단한다. 저러다 아프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도움을 호소하는 어느 할아버지를 목격한 사람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암에 걸린 아내의 수술비가 모자라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는 애통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는 3년 전에도, 2년 전에도 나타났다. 그때 그의 호소를 흉내 낸 인물이 여럿 나타났다. 그들의 모금 바구니는 대개 비었을 것이다.

어느 이비인후과 의사의 이야기다. 시끌벅적한 사회를 사느라 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 보청기를 처방해 주어도 소용없단다. 감도가 너무 좋은 보청기가 세상의 오만 가지 소리를 끌어오기 때문에 몸이 견디지 못한다. 결국 보청기를 떼어내 버린다는 것이다. 잡소리마저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어느덧 서로의 진심이 잘 보이는 것만 골라 보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붙잡을 가치 있는 일에만 눈길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지나쳐 버린다. 시선을 선택한다. 말의 궁합이 맞지 않는 위선적인 단어에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소리도 선택한다. 지하철에서 우리들은 그것을 경험한다.

지방선거다, 대선이다 해서 혐오스럽고 위선적인 단어들이 간단없이 튀어나오는 계절이다. 그래서 이른바 지도자들은 '대한민국'을 남용하지 말 일이며 '국민'을 과용해 부르지 말 일이며 '과학'을 오용하지 말 일이다. 진심을 보일 때 호소가 와닿는다.

최철주 월간 NEXT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