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교에서는…-48-교실의 민주화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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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시국관련 해직교사복직문제로 교단의 민주화가 교육계내외의 최대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10일 상오 8시50분 서울A국교교무실의 직원조회.
새마을주임·과학주임·체육주임·윤리주임이 차례로 일어나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첫시간 수업시작까지는10분. 관계기관의 협조공문이 고지되고 이어 어린이신문구독료와 폐품을 빨리 거둬달라는 말까지 들었을 때는 벌써 시작종이 울리고 있었다.
순간, 1학년담임 여선생님이 벌떡 일어섰다.
『요즘 1학년교실에 모아둔 폐품이 자주 없어집니다. 고학년 선생님들께서 신경을 좀 써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저희 교실에서도 종종 없어지는데요, 뭐.』5학년담임 남자선생님의 퉁명스런 대꾸에 1학년선생님이 멋적은 표정으로 앉고 말았다.
『이건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폐품수집 때문에 행여 어린이들이 남의 물건에 손대는 버릇이 생기게된다면 중대한 문제입니다.』어느반 할것없이 흔히 그런 일이 있다며 4학년담임의 한 교사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런일이 있어선 안되겠죠』며 말을 막고나선 교감은『그건 그렇고 교육감지시사항을 말씀드리겠읍니다』며 여름방학중 서울을 벗어날 선생님은 신고를 해달라고 했다.
급히 교무실을 나서는 교사들은 『교육감지시라며 방학중 행선지를 신고하고 다니라는 것도 때가 때인만큼 어색하게 들렸지만, 폐품문제는 어린이교육과 직결되고 모든 교사들이 속으로 고민해오던 것인데 그런식으로 잘라버리니…』라며 언짢은 표정들이었다.
『직원회의란게 어린이회의만도 못해요. 어린이회의는 그래도 제법 「성금이라면서 똑같이 5백원이상 내야하는 건 뭡니까」「어째서 독후감 쓸때는 지정된 책만 읽어야합니까』라고들 하지 않습니까.』한 교사는 혼잣말하듯 했다.
사실 교무실의 직원회의는 권위적 분위기로 지배되고 있고 교장·교감의 권위에 도전하다가는 서리를 맞는 경우도 없지 않다. 특히 젊은 교사는 그렇다.
서울B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교사 (28)가 어느 날 직원회의에서 바른 말을 하고 나섰다. 『왜 보강수업수당을 지급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직원회의에서 그런 문제를 들고 일어서는 것은 좋지않습니다.』학년주임이 가로막고 나섰다. 다른 교사들이 이교사편을 들려하자 듣고있던 교장이 「선언」을 하고 나섰다.
『나는 공식석상에서 발언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 할 말이 없어진 직원회의는 그것으로 끝났다. 다음 학기에 이교사는 다른 학교로 전보됐다.
학교장의 방침에 반발하다 담임을 박탈당하는 일도 있다. 서울C중학교 김교장 (61)은 3학년 담임들의 학부모 면담을 금지했다. 이에 박교사 (40)등이 다른 학년도 아닌 3학년의 학부모면담을 못하게 하면 진로지도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며 대들었다.
결국 박교사는 담임권을 박탈당했다. 『교사는 교장의 학교경영방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른 교사들이 반발하는 기색을 보이자 김교장은 직원회의에 녹음기를 갖다놓기 시작했다.『학교의 직원회의가 이처럼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들의 불만과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거나 수용하지 못하니까 「이래선 안되겠다」는 교사들이 따로 모여 조직을 만들고, 교육계전체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시대가 올 수밖에 없지 않았읍니까.』 서울D중 강교사(36)는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직원회의를 1주일에 1회 정도로 형식화하고 지시일변도로 학교를 운영하기도 합니다』고 지적했다.
서울E중 백교사 (45)는『학교현장에서는 언제나 크고 작은 문제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사들이 지혜를 모아 풀어갈 때 없었던 것보다 오히려 교육에 도움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며 『이를 위해서는 직원회의가 신참교사들도 마음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로 활성화돼야 가능합니다』고 말했다.
연세대 김인회교수 (교육학)는 『직원회의는 학교내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한 최고의결 기관입니다. 그곳에는 토론이 허용돼야 하며, 상급기관의 공동지시까지도 비교육적이란 결론이 나면 묵살할 수 있는 직원회의가 될때 학교가 바로 서고 바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읍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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