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헌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이제 진짜 민주헌법을 만든다면 그 모양도 좀 그럴듯 했으면 좋겠다. 외국처럼 몇백년씩 묵은 헌법을 애지중지하며 손질을한다면 또 모른다.
4년이 멀다하고 헌법을 뜯어고치는 나라에서 그때마다 내용은 고사하고 문장이 거칠고 어러워지는 것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요즘 어느당이 초안한개헌안의 전문이 바로그렇다. 권력구조다, 기본권이다하는 것은 전문가들에게 맡겨 놓는다고 해도 그 내용을 담는 그릇은 정성스레 갈고 닦아 이왕이면 윤기가 날수는 없을까.
우선 이제나 그제나 「유구한 역사」라는 첫머리는 유구하기만 하다. 「오랜」 역사나 「긴 역사」는 못쓰는 말인가.
「건립하고」,「재건하였으며」,「천명함으로써」,「공고히」,「단호히」,「극명히」,「제제도」,「각인」,「발휘케하면,「완수케하여」,「기한다」는 말은 하나밖에 없는 전문용어가 아니다.
전문부터 이 모양이다.무식꾼이 용케 문자 몇마디 배워 행세하는것 같은 어투다.
모처럼 만든 민주헌법이면 모든 사람이 친숙하게 읽고 알아듣거나 적어도 짐작할수 있는 정도는 돼야한다. 어휘의 선택도 선택이지만 문장도 좀 더 세련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문필가나 문인들의 감수를 받는 것도 한 방법일수 있다. 어문학자들의 문법교정을 받는 것은 더 말할것 없다.
적어도 헌법인데,건국이래 그렇게도 끈질기게 시비와 논란을 거듭해온 헌법인데 전문쯤은 서사시와 같은 멋을 부릴수도 있을것이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위에 자유의 축복이 그치지 않게할 목적으로 합중국을 위하여 이 헌법을 만든다.』
미국 헌법의 전문은 이렇게 끝맺는다. 모두 합쳐봐야 한 문장의 길이밖에 안되는 전문이다.『무릇 인간은 인종,종교,신조의 차별없이 양도할수 없는 신성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선언한다.』
프랑스 헌법의 전문 첫 구절이다. 헌법이쉽게 만들어졌다고 헌정이 쉽게무너진 나라는 없다.
지금도 늦지 않다.
헌법이 국민에게 겁을 주는 법이 아닌바엔 어려워야할 이유가하나도 없다. 끝손질, 마무리를 잘 하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