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정비에 바쁜 여야(기자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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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씨를 포함한 사면·복권에 이어 전두환 대통령이 예상보다 빨리 민정당의 총재직을 이양하는 등 정국 템포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한열군의 장례에 대인파가 몰린 것도 상당한 충격을 주었어요.
-대통령의 총재직 이양 시기가 예상보다 당겨진 것도 그런 충격의 반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6·29이후 조성된 모처럼의 분위기가 장례 인파로 반전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의 일환이 아니냐는 인상이죠.
-당초 총재직 이양이 7일로 예정됐던 만큼 인파의 충격과는 직접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죠. 그러나 7일의 예정이 내주 초로 미뤄졌다가 다시 앞당겨진 것은 사실입니다.
-총재직 이양과 그 시기에 대해 다소 내부 혼선이 있었던 것 같잖아요?
-지난 주말 권정달 이종찬 김정남 정동성 이치호 의원 등이 잇달아 청와대에 갔었는데 이 중 세 사람은 적극 만류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찬성·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더군요.
-김정남 대변인은 한때 『절대로 총재직 이양은 없을 것』이라고 공식 언명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결심은 지난달 23일부터 시작된 각계 원로와의 대화에서 이미 표출됐다는 얘기입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 초연한 입장에서 앞으로는 외교·안보와 올림픽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한 데 크게 공감을 표시했다는 것이고 교계인사들을 만난 후 나중에 한 분을 따로 만난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사퇴 결심을 밝혔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정국 상황에 따라 여권이 선거 태세 정비가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래요. 내주 들어 개각·개편 등 잇단 태세 정비가 뒤따를 예정입니다.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와 같은 논리로 겸직분리의 원칙이 지켜질 것 같아요. 공정한 선거관리 정부의 인상을 높이기 위해 의원 겸직 장관들은 의원직을 내놓거나 당으로 모두 복귀할 것이라고 합니다. 야권의 거국과도 내각요구에 대한 민정당의 응답이라는 것이죠.
-일부에서는 범양사건 시비가 재연되지 못하도록 관련 일부 장관까지도 이번 기회에 물 러 나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민정당은 부총재 신설동 기구 개편도 한다는 생각인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당초의 구상은 구여·구야·당내 인사들을 대표하는 부총재를 두고 부통령제가 신설되면 수석부총재를 러닝 메이트로 하자는 안이 검토됐던 것 같아요.
-노대표는 과거처럼 낱알 줍는 식의 인물 구성으로는 선거에 큰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보고 한 세력, 한 분야를 대표할 만한 인물을 끌어들이고 그에 따라 그 세력이나 그룹까지 끌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거론됐던 인물이 김재정·吳有邦씨 등 여야권인사였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창당 이후 7년간 유지해오던 사무총강 우위제도는 약화된다고 보아야 하겠죠.
-l후보 지원체제의 일환으로는 총재 특보를 두고 미국에서처럼 민간 광고맨 등을 포함한 선거 추진 실무반을 당외에 둔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러나 과연 이번 당직과 기구 개편으로 「군부 지배의 연장」이라는 야당의 주공격을 피해 나갈 수 있을 만큼 당의 면모를 「문민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예요.
-현재처럼 여권이 수세에 몰리면 사람들이 선뜻 모여들겠느냐는 점도 있죠.
-그러나 6·29 선언, 사면·복권, 총재직 이양 등 잇단 속공으로 민정당 사기는 높아요.
-야권에서는 여권의 잇단 조치에 대해 『그래봐야 약효가 얼마나 가겠느냐』며 선거 승리는 문제없다는 분위기입니다.
-9일 시청 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면 대세는 이미 정해졌다는 거죠.
-그러나 두 김씨의 후보 조정을 둘러싸고 예상되는 잡음이나 2학기 개학 후의 학원동향·여야 협상 전망 등을 들어 불안한 관측도 나오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선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죠.
-현재로서는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두 김씨의 후보 조정 문제가 최대의 열쇠입니다. 두 진영은 피차 「단합」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단합」에 「체중」이 실려 있지 않은 느낌이거든요.
-현시점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두 사람 모두 『내가 양보해야겠다』는 결심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죠.
-동교동 측으로서는 불출마 선언을 어떻게 하면 국민적 저항감 없이 넘기느냐가 가장 문제죠.
-물론입니다. 최근 김대중 의장은 『후보 단일화는 꼭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 말은 곧 자기의 출마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불출마 선언이 유효하면 후보 조정문제가 아예 없을 테니까요.
말하자면 벌써부터 「불출마 선언 실종 상황」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죠.
-상도동 측은 대여 협상을 조속히 추진, 이를 타결시켜 이에 따른 기세를 타고 후보 문제도 조속히 결정짓자는 입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동교동 측은 「김대중 바람」을 일으켜 외부에서 대세를 결정지어 안으로 들어가자는 작전인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방식이 자칫 80년 상황을 재현할 우려가 있고, 또 여러 경로를 통해 「비토그룹」의 목소리가 전달되고 있는 것을 감안해서인지 내부에서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많아요.
-그러니까 「바람」도 일으키고 「혼란우려」에 대해서는 자제도 보인다는 절충적인 페이스를 보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계일각에선 김의장이 △자신에 대한 「비토그룹」 △차기 정부는 취약 정부가 돼 단명으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노벨평화상 수상 등을 고려, 출마 결심을 확고히 정하기 못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서는 어느 시점에 가 불출마 선언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근거 없는 추측도 있어요.
-그 얘기는 상도동 측 일부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어차피 양측은 세확보 경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 양측이 지지 세력 과시 경쟁을 할 것으로 봐야겠죠.
-그런 측면에서 동교동 측은 벌써 자신감을 보입니다.
9일 이한열군 장례식 때 인파에서 나온 「김대중, 김대중」하는 소리가 「김영삼, 김영삼」하는 소리보다 훨씬 컸다는 거죠.
-그러나 재야나 학생층은 여러 갈래이므로 획일적인 도식은 곤란해요. 종교계 지도자를 포함한 온건 인사들은 상도동에 기울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경쟁적인 「세확보전」이 벌어질 경우 정국은 또다시 위험 수위로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죠. 민통련· 제헌 의회파들은 정권 퇴진 요구를 하고 있고, 구속자 석방에 따른 「불씨」, 협상의 난항 등 요소가 복합적으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 위기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어요.
-이제 겨우 민주화 협상의 개막단계인데 앞으로 언제 어떤 계기로 정국이 다시 삐끗할지 누구도 알기 어려워요.
-그런 점에서 9일 시청 앞의 인파와 여기서 벌어진 상황을 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였는가를 우선 생각해야 하지만 일부 학생들이 시청에 들어가려는 것을 밀어내자 박수가 나온 점, 광화문으로 진출할 때 동조가 적었던 현상 등도 잘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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