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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정당언론의 활성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작년 아시안게임이 끝난후 여야정당대표들은 국회연설을 통해 하나같이 타분야에 비해 낙후한 우리 정치를 개탄하고 합의개헌을 의해 분발할 것을 다짐했다.
또 개헌협상이 한치의 진전도 없이 파국의 언저리를 맴돌자 미국의 한 국회의원은 『마주보고 달려오는 두 기관차』라고 우리의 정치판을 묘사했고 미국신문은 『한국의 정치가 현대차수준에 못따라 간다』고 비꼬았다.
민정당의 직선제 수용으로 파탄의 고비는 가까스로 넘겼지만 개헌을 둘러싸고 보인 우리의 정치수준은 이렇듯 내외로부터 좋지 못한 평점을 받았다. 정치가 민주화를 선도해 사회를 끌고 나가지는 못할지언정 국민의 걱정을 끼치는 대상이 되어서야 되겠느냐는 질책이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게 사실이다.
정치가 이처럼 수준미달을 탈피하지 못하고있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도 정당운영의 민주화란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도대체 이 구조, 이 행태로는 여야 할것없이 정당정치의 성숙을 기대할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정당들이 어떤 병폐를 갖고 있는지는 내부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방 알수 있다.
우선 구성부터가 국민정당으로서의 요건을 결하고 있다.
민정당은 5공화국 개혁주도세력이 각계 인사를 「낟알」로 주워모아 짠 정당이다. 밑에서부터 생성된 정당이 아니라 위에서 만든 정당이다.
그러다보니 지난 6년반 동안 민정당을 지배한 분위기는 「일사불란」 이었다. 중요한 정책이나 인사는 자유로운 토론과 공논에 바탕하기보다는 당총재의 「결단」에 의해 추진되는 사례가 많았고 그것이 어느덧 체질화 되다시피 했다.
남재희의원 같은이는 『그같은 분위기로 인해 당내에 잡음은 작았지만 대신 활력이 떨어져 지금처럼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때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가져왔다』 고 자평하고 있다.
민정당이 당운영의 민주화란 점에서 기필코 극복해야할 과제는 의사결정이 공개되지 않거나 생략되는 점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 여당에는 당내 이견이 곧 분파적 잡음으로 간주되는 풍조가 있다.
그러다 보니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인 회의와 토론은 뒷전으로 밀리고 의사결정이 몇몇 과석의 밀담이나 사담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상이 보편화되었다. 밀실정치, 현대판 궁중정치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웠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중집위나 의원총회는 열어봐야 당지도부가 사전 지명한 몇몇 사람이 나가 발언하고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것이 고작인 경우가 허다했다.
지도부는 당내이견이 자신의 무능으로 평가될 것을 두려워하고 의원들은 눈치없는(?) 발언으로 자칫 공천이나 「자리」 배정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 한다. 할말이 있더라도 회의에서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따로 당직자에게 자신의 견해를「조용히」밝히는 경향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는데 중간보스제가 효과적일수 있다(배성동의원) 는 주장이 있으나 일체의 파벌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총재의 강력한 의지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중간보스제가 있으면 건전한 당내경쟁을 통해 활력을 되찾고 지도부와 의원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는 이점이 있는 반면 일사불란하게「통솔」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그룹간의 이해상충으로 잡음이 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정당내에는 건전한 경쟁보다 왕왕 변칙적 충성경쟁이 인사의 흐름을 좌우한다. 그러다보니 소신보다는 해바라기성 눈치보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여론에 아랑곳없이 대야강공에 앞장서는 현상같은 것은 최근까지 자주 보아온 일이다.
당운영의 비민주성은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항상 민주주의를 지상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야당내에도 엄연히 있다.
야당에는 표면상 활발한 발언과 토론이 있고 오히려 너무 말이 많아 탈이라는 인상도 있지만 당의사결정의 과정을 보면 여당과 비슷할 정도로 하향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의 민주당은 한마디로 두김씨의 당이라고 할만큼 두김씨의 의사에 따라 당논이 결정되며 그 과정에 일반의원들의 토론이나 비판이 개입될 여지는 거의 없다. 민주당의원들은 상도 아니면 동교동계 소속으로 계파별 의견조정과정이 있지만 계파를 거느리는 두김씨의 장악은 거의 절대적이다.
두김씨에 대한 충성경쟁 현상도 있으며 당직배정에 있어서도 능력보다는 충성심이 더큰 요인이 되기도 한다.
두김씨에 의한 이같은 단단한 장악은 야당의 오랜 계파정치의 전통탓도 있지만 오랜기간 계속된 혹독한「외압」탓도 크다. 두김씨를 중심으로 투쟁하든가 아니면 당을 떠나든가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중간지대가 있기가 어렵다.
이것은 지난번 신민당의 분당과정을 보면 쉽게 알수 있는 일이다.
야당의 구조가 직선제를 관철하고 정부여당의 양보를 얻어내는데는 위력을 발휘했으나 수권정당이 되자면 뼈를 깎는 변신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중논이다. (홍사덕· 허경구의원등) 지금까지 보스에 대한 맹목적 충성·금품수수·계보간의 흥정에 의해 공천이 거래되던 난맥상은 시정되어야하며 의원들 또한 정치소신보다 공천탈락의 두려움 때문에 두김씨의 우산밑을 파고드는 소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의 정책기구 활성화 같은 근대정당의 필수적 기능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계파의 이익에만 악착같은 분위기는 집권경험을 갖기 전에는 고치지 못할 것이란 것이 야당의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경상도· 전라도등의 지역의식도 문제가 아닐수 없고 깎아지른듯 양분되어있는 역관계도 야당의 환골탈태를 막는 큰 장애요인이며 탄압속에 정상적인 정치훈련을 거치지 못하고 투쟁 일변도로 굳어진 생리가 집권· 민주화란 목표와 어떻게 조화될지도 관심사다.
여야정당이 이제 모두 민주화를 내걸고 경쟁적으로 민주화방안을 내세우지만 진정한 민주정치로의 진전은 정당 스스로의 민주화작업과 체질개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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