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아시는가, 삽질의 즐거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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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노동 끝에 만나는 그 노곤노곤한 몸 속엔 특유의 부드럽고 유장한 힘이 숨어 있다. 마음이 침묵할 때 비로소 나오는 힘이다. 그 힘은 노동을 처음 시작할 때의 그 팔팔한, 근육질적인 힘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 힘 때문에 몸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몸으로 일하고 난 뒤의 포만감을 이렇게 적확하게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그것은 또한 손끝으로 가능한 글이 아니다. 저자는 도시생활을 접고, 가족과 떨어져 홀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6년째인 사람. 그에게 농사는 사유의 기회요, 이른바 노동 선(禪)의 실천이다. 이 책에서 노동의 경험을 실마리로 무위(無爲)자연을 지향하는 동서양 철학을 펼쳐보이는 것도 자연스럽다.

노동과 사유의 이런 결합은 저자에게 새로운 언어와의 만남이기도 하다. 새 이름인 '곤줄박이', 덩굴풀 이름 '꼭두서니', 잠자리의 일종인'고추좀잠자리'같은 자연의 이름이 최소한 그에게는 직장동료의 이름처럼 새겨진다. 또 농사선배인 어머니가 구사하는 '잡을손'(농사일의 솜씨가 좋음)'만도리'(마지막 김매기)'물손'(물로 인한 재해)같은 표현 역시 그의 언어를 풍요롭게 한다. 귀농(歸農)살이에 대한 실용정보를 원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맞지 않는다. 행간에 흐르는 생생한 관찰과 사유의 힘을 맛보고 싶어하는 도시인들에게 오히려 울림이 큰 책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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