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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추리극 「두뇌게임」극 아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TV가 대중매체라는 사실은 대중의 저급한 욕구를 부추기라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켜야 한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다양성의 추구라는 전향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볼때 멜러드라머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재의 TV풍토에서 TV추리극은 새롭게 조명되어야할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추리극은 우선 시청자의 일방적인 몰입만을 강조하는 멜러물과는 달리 시청자의 간접참여를 유도, 추리력을 통한「지적 오락」을 가능케한다.
또 추리극은 하나의 사건을 풀어내는데 있어 단순한 권선징악적인 계도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범죄심리를 통해 선과 악의 문제, 범죄와 사회적요인의 관계등의 분석을 바탕으로 할 때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하나의 작품성도 가질 수 있다.
그밖에 일반적인 수사극보다는 하나의 범죄를 놓고 다양한 계층이 등장, 사회적 지위에서 벗어난 인간군상들을 연결시켜 범인의 체포로 얻어지는 해결방식 이상으로 완전범죄의 허구성을 명증하게 함으로써 범죄예방의 효과까지 지니게된다.
지난주 KBS와 MBC양 TV는 각각 한편의 추리극을 끝냈다.
K-2TV의 고정추리물인『일요추리극장-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M-TV의 미니시리즈 10부작『최후의 증인』이 그것.
『최후의 증인』은 6·25라는 역사의 한순간에 휘말려 20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했던 황바우라는 인물과 그의 주변인물등을 통해 인간의 증오와 파멸, 그 이면에 깔린 우리사회의 비리등을 묘사한 작품. 단순살인사건의 뒤에 있는 6·25를 겨울장면의 사전제작등을 통해 현실감있게 드러내면서 극중 오형사(유인촌역)가 시청자의 대리체험자로서 사건을 푸는 방식을 택해 일단 긴장감과 추리물로서의 재미를 획득했다.
그러나 결말부분에서의 주요인물들의 연쇄적 자살이 「더러운 사회에 대한 개인적 저항과허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시청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설득력이 부족, 극의 결말이 아닌 이야기의 수습같다는 흠을 남겼다.
KBS 제2TV의 고정프로인 『일요추리극장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추리소설의 대가 『애거더·크리스티』의 『열개의 인디언인형』을 극화한것으로 원작의 지명도 때문에 쉽게 주목을 끌 수 있는 작품.
형법이 벌할 수 없는 양심의 범죄를 저지른 10명의 사람. 그들은 어느날 낮선 별장에 초대된뒤 하나 둘씩 죽음을 당한다. 인간의 양심은 죽음 앞에서야 나타나며 죄값은 오직 죽음뿐이라는것이 이 작품의 메시지. 그러나 이 드라머는 잇단 피살체의 피흘리는 모습을 남용, 연쇄적인 죽음이 주는 공포감만 조성했을뿐 극중 인물들의 내면심리와 선과 악의 대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데 실패해 모처럼의 좋은 원작을 안이한 번역극 차원에 머무르게했다.
올 여름 양TV는 황석영·김성종씨등의 원작추리소설을 극화한 작품들을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제는 단순한「피서용 공포물」이 아닌 시청자와 드라머의「두뇌게임」이 가능한 본격 추리물이 등장해야할 때다.<박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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